전 세계적으로 약 2억8,500만 명, 한국엔 약 26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있다. 그런데 시각장애를 포함한 장애의 88%가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에 의해 발생한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보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을 넘어 AI로 급변하는 시대에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정보의 격차를 줄이며 살고 있을까. 내가 만일 장애를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닷은 지난 1월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접근성(Accessibility)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설립된 지 8년 된 스타트업 닷이 어떻게 이 상을 받게 됐는지, 이 제품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지 말해 보려 한다.
우선 점자책은 비싸고 희귀하다. 전 세계의 학교, 기업, 연구기관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실제 제품화까지 이르지 못했다. 기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장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모든 점자보조기기는 일본·독일에서 개발된 피에조 셀로 만들어졌으며, 세로 길이가 길어서 가로 배열만이 가능했다. 더욱이 이 셀은 전기신호에 의해 움직이는 세라믹 소재로 부피가 커서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적합하지 않았다. 점자보조기기가 비싸고 휴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던 이유다. 닷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셀은 세로 길이를 짧게 설계해 가로×세로 구조의 2차원 면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점자보조기기 최초의 시도였다.
피에조 셀에서 사용하던 세라믹 소재를 전자석으로 바꾸면서 경제적 장벽도 크게 낮췄다. 제조가격이 기존 기기 대비 약 4분의 1로 낮아지면서 구매자들은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촉각 디스플레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을 활용한 320셀 촉각 디스플레이 ‘닷 패드’는 시각장애인이 손끝으로 이미지를 만져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닷 패드는 AI를 사용해 읽고 싶은 이미지를 분석하고 분할해서 화면에 표기해 낸다. 이로써 시각장애인은 인터넷상에 있는 모든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닷은 국내외 총 110여 개의 특허를 등록하고 출원한 상태다. 가장 대표적인 특허는 점자표시 장치, 촉각 디스플레이 및 이를 포함하는 전자기기 제어, 지독방향 설정·방열, 공간안내용 시스템 및 방법 등으로 세분화된다. 닷은 이 디스플레이로 ‘닷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출시했다. 이 키오스크는 국내외 길 안내 촉지도와 공공건물, 대중교통, 공항, 박물관 등에 도입돼 더 많은 장애인과 교통약자의 접근성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기에 어느 순간 장애를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닷 제품을 포함한 여러 보조공학기기의 개발과 발전은 특정 누군가를 위한 기술이 아닌, 미래의 우리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기술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장애를 마주하더라도 계속해서 일하고, 공부하고, 쇼핑하고, 대중교통을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제품과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보조공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다음 세대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