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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게 영화를 즐길 권리
최인혜 ㈜오롯플래닛 대표 2023년 04월호

영화관람은 접근성이 뛰어나고 가성비가 좋아 많은 사람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이다. 그런데 백 편의 영화 중 단 한 편만 관람할 수 있고 그마저도 선택할 수 없다면 어떨까.

청각장애인이 한국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등장인물, 대사, 음악 등 소리 정보를 전달하는 ‘배리어프리 자막’이 필요하다. 배리어프리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는 전체의 1% 미만이다. 백 편을 개봉하더라도 청각장애인이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오직 한 편에 불과한 것이다. 

시각·청각 장애인의 영화관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이 6년째 진행 중이다. ‘대형 영화관은 시각·청각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화면해설, 자막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으나 여전히 관련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오롯플래닛(이하 오롯)은 청각장애인의 문화소외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공한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각장애인용 화면해설 음성과 청각장애인용 자막이 함께 제공되는데, 화면해설의 음성과 영화의 소리가 섞여 잔존청력이 있는 청각장애인은 몰입하기가 어렵다. 오롯은 청각장애인 관객의 만족도와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배리어프리 자막을 별도로 제작한다.

오롯은 누구나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작하고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500명 이상의 봉사자가 자막 제작에 참여했으며, 기업과 기관의 사회공헌 참여도 활발하다. 자막은 청각장애인 당사자의 검수를 통해 완성되고 오프라인, 온라인 상영회를 통해 청각장애인 관객들에게 선보여진다. 

배리어프리 자막은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노인, 어린이에게도 유용한 서비스다. OTT서비스를 시청할 때 한글 자막을 사용하는 비장애인 관객들도 적지 않다.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모두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롯이 배리어프리서비스를 통해 기대하는 점은 ‘공감대 형성’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영화, 드라마 이야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의 경험은 삶의 질과 직결되며, 단순 여가활동을 넘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사회통합 기능을 담당한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배리어프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장애인이 최신 영화를 관람할 권리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일부 OTT 콘텐츠를 제외하면 자막 없는 콘텐츠가 대부분이기에 선택권과 접근성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장애인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법률 개선과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며 제작사·배급사·영화사 관계자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그가 번역한 『장애의 역사』에서 ‘차별은 공기와도 같아 기득권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삶의 모든 순간을 차별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한다. 언제든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는 것은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다. 이 권리가 누구에게나 당연해질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와 문화향유권을 보장할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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