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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등 뱅크런이 부른 참사 이번에도 이어질까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저자 2023년 05월호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뱅크런이 주목받고 있다. 뱅크런이란 예금 고객들이 은행의 부실 위험을 두려워해 일제히 예금을 인출하는 일을 뜻한다. 은행들은 예금의 상당 부분을 대출하거나 유가증권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예금인출이 일거에 집중되면 마땅한 대책이 없다. 우리의 경우 2011년 발생했던 저축은행 사태를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시장경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의외로 뱅크런이 자주 발생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동화 『메리 포핀스』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메리 포핀스를 유모로 고용한 뱅크스는 이름처럼 실제 은행가로, 도스 톰스 모슬리 그럽스 피델리티 투자은행의 중역이다. 하루는 아이들을 자신의 직장인 은행에 데려갔는데, 직장 상사인 도스가 뱅크스의 아들 마이클에게 용돈 2펜스를 예금하라고 강권한다. 하지만 그 돈으로 은행 밖에 있는 비둘기에게 줄 모이를 사고 싶었던 마이클은 도스에게 “돌려주세요! 내 돈 돌려주세요!”라고 외쳤고, 은행에 있던 일부 고객들이 마이클의 외침을 듣고는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한다. 곧바로 다수의 예금자가 똑같은 일을 벌이자 은행은 예금 지불을 중단한다. 

실제 1929년 대공황 당시 미국에서만 수천 개의 은행이 뱅크런 앞에 무너졌다. 은행이 망하면 예금자뿐 아니라 대출자에게도 재앙이 벌어진다. 왜냐하면 은행은 망하기 전에 대출을 회수하고 보유한 유가증권을 팔아치우는 등 마지막 발버둥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채권은 물론 보유 부동산까지 처분하기 시작하면 자산가격은 폭락할 것이고, 이는 다시 은행의 대출을 부실화한다. 은행은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데, 자산가격이 폭락하면 은행들이 서둘러 대출을 회수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뱅크런이 발생하면 경제 전체의 위기로 전염되는 경우가 많다. 1929년 대공황이 그랬고 2008년 금융위기도 사실 뱅크런이 부른 참사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SVB 뱅크런도 대불황으로 이어질까? 

다행히 여러 차례 뱅크런을 겪다 보니 금융당국도 다양한 방비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가장 직접적인 대비책은 1933년 미국 루스벨트 정부가 도입한 ‘예금보험제도’다. 한국의 경우 5천만 원까지의 예금은 예금보험 대상이기에 이 정도의 예금을 가진 사람들이 굳이 뱅크런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SVB 뱅크런이 발생한 이유는 법인고객들 때문이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이 주된 고객이다 보니 대부분 예금이 예금보험 한도(25만 달러)를 넘어섰던 것이다. 특히 폰뱅킹이 활성화되면서 디지털 기기로 신속하게 계좌이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예금보험에 이은 또 다른 대응책은 ‘유동성 공급’이었다. SVB 뱅크런이 다른 은행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금융당국은 은행이 보유한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줬다. <그림>을 보면, SVB 뱅크런이 발생했던 2023년 3월에 미국 연준의 보유자산이 급격히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들은 보유자산을 급하게 처분할 필요가 없고 또 다른 금융기관과의 합병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럼 왜 2008년에는 뱅크런을 막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정치적인 문제다. 2008년 봄, 연준이 월가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경영위기에 개입한 이후 “부실 금융기관 구제에 혈세를 투입했다”는 정치 공세의 타깃이 됐다. 실제로 2008년 9월 29일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프로그램(TARP)’ 법안이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운신의 폭이 줄어든 것은 분명했다.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 직전 1주일 만에 500억 달러가 인출되는 등 역사상 최악의 뱅크런이 발생할 때 이를 인수하려는 금융기관이 없었던 것도 금융위기를 유발한 요인이었다. 금융당국이 다양한 ‘당근’을 제시했음에도 대부분 금융기관이 인수를 포기한 것은 자산이 얼마나 부실한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동산가격의 붕괴로 연관 채권가치가 급락하는 중이니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한 금융기관도 함께 망할 수 있다는 공포가 컸던 것이다.

이 두 가지 면에서 볼 때 SVB 뱅크런이 2008년처럼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부실은행 자금 지원에 정치적 부담이 많이 사라진 데다 미국 지방은행이 보유한 자산이 일거에 부실화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경제분석가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외부충격이 벌어진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제한적인 정보를 갖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야말로 경제분석가가 짊어진 영원한 숙제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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