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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유동성위기로 끝나지 않을 것… 은행의 수익성보다 건전성 관리 강화가 시급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3년 05월호

2022년의 시작과 더불어 뚜렷하게 나타났던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꾸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연준을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시장 유동성은 빠른 속도로 고갈돼 갔다. 자금경색이 본격화되면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커졌고 금융회사들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올 3월의 글로벌 ‘뱅크데믹’(Bankdemic; 특정 국가에서 나타난 은행 부실이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세계 곳곳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을 담은 신조어)은 글로벌 통화긴축에 따른 충격이 은행 영역에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유동성위기로 파산한 SVB, ‘레고랜드 사태’로 내성 생긴 국내 영향은 미미

올해 3월 미국에서 일련의 은행 파산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글로벌 은행들의 재무 건전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우선 3월 8일 암호화폐 전문은행인 실버게이트가 재무적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자발적 청산을 결정했다. 신용위기의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실버게이트은행의 자산구성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금리급등 상황에서 유동성위기를 통제하는 데 실패해 뱅크런과 은행 청산을 피하지 못했다.

실버게이트은행의 청산이 발표된 지 불과 이틀 후인 3월 10일 미국 첨단산업의 요람이라 불리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상업은행이자 자산규모로 미국 내 16위를 기록했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SVB의 파산은 전형적인 유동성 관리 실패 사례다. SVB는 고객이 맡긴 예금의 상당 부분을 미국 장기국채에 투자해 왔다. 미국 국채가 대표적인 안전자산임을 감안할 때 SVB의 자산구성에 내재한 신용위험이 크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금리급등 시기에 만기가 짧은 예수부채로부터 유입된 자금을 10년이 넘는 장기국채로 운용하면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했고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훼손됐다. 결국 SVB는 폭증하는 예금인출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SVB 파산 직후인 3월 12일 뉴욕에 본사를 둔 시그니처은행마저 파산하며 미국 금융시장은 2008년 이후 최악의 혼돈기로 빠져들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은행의 연쇄파산 불길은 즉시 유럽으로 번져갔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스위스의 대형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파산설에 시달려 왔던 은행이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인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용위기 우려가 크지 않았던 미국 은행들조차 파산에 이르는 상황에서 투자 실패로 인한 자산 부실화가 뚜렷했던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은 파산의 불길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스위스 정부의 개입과 UBS에 의한 인수라는 극적인 해법을 통해 파산의 문턱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해법은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후유증을 남기게 될 것이다. 

미국발 뱅크데믹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10월 소위 ‘레고랜드 사태’로 불리는 자금시장 경색 현상이 2개월간 이어졌는데, 프로젝트파이낸싱-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PF 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조달을 위해 시행사에 대한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해 발행되는 통상 3개월 만기의 기업어음)에 대한 강원도의 보증이행 거부로 촉발되긴 했지만 그 본질은 통화긴축에 따른 유동성위기라 볼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금융회사나 관련 건설사의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 금융시장이 유동성위기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만드는 ‘예방주사’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유동성 공급을 늘리고 시장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민관의 협력적인 대응이 시장 안정화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며, 이후 3월 대외로부터의 충격이 상당했음에도 내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뱅크데믹으로 혼돈의 시기를 보냈던 글로벌 금융시장은 4월 이후 완만하게 안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스위스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정책이 시장의 패닉을 상당히 완화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위기의 본질이 신용위기가 아니라 유동성위기이기 때문에 해결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측면이 있다. 미국 정부와 연준은 은행의 파산이 시스템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속히 예금자 보호 한도를 확대해 전액 보장했으며,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은행 기간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해 담보부 대출을 실시했다. 미국발 뱅크데믹은 신용위기의 축적이 아니라 금리급등에 따른 유동성위기의 성격이 강하므로 연준의 이러한 대응방식은 사태 해결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의 경우 미국 은행들과 대조적으로 신용위기의 누적이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에 단순히 유동성을 공급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적된 부실을 털어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기에 스위스 정부는 UBS의 크레디트스위스은행 인수와 조건부자본증권(AT1)의 상각(가치를 0으로 만들어 채권을 갚지 않겠다는 의미)이라는 초강수를 두게 됐던 것으로 판단된다.

 

가계부채, 부동산 PF 부실화 위험 감안해 
은행의 위험흡수 능력 키워야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난 뱅크데믹은 국내 금융시장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첫째, 3월의 글로벌 뱅크데믹은 신용위기가 아닌 유동성위기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데, 이는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대규모 신용위기에 대한 전초전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해 볼 때 미국 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단순히 유동성위기로 끝난 적은 거의 없었으며, 그 결말은 대부분 대규모 신용위기를 동반한 경제 경착륙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종료하더라도 상당 기간 고금리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한 신용위험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자금경색 상황에 대비해 하반기에는 금융회사의 유동성 및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사전적으로 정비해 둬야 할 것이다.

둘째, SVB 파산은 은행에 대한 규제체계가 은행 및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평가할 수 있다. 금리상승에 따른 신용 우려가 급증하는 시기이므로 은행의 수익성보다는 건전성에 대한 관리 강화가 시급하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부실화 위험,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 등을 감안할 때 은행에 대한 추가적인 위험흡수 능력 강화 조치는 그 필요성이 매우 높다. 은행의 대손충당금(은행들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쌓아두는 자금) 적립 의무를 강화함으로써 증가하는 신용위험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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