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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의 제전 엑스포, 인류 공통과제 논의 플랫폼으로 진화
오룡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저자 2023년 06월호

“Everything begins with EXPO.” 2012년 여수 전문박람회 때 국제박람회기구(BIE) 전시관 입구를 장식했던 문구다. 현대문명의 모든 산물이 세계박람회(이하 박람회)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뜻이다. 박람회를 관장하는 국제기구가 이처럼 ‘당당한’ 슬로건을 내건 배경에는 3세기에 걸친 빛나는 전통이 있다. 당시 BIE 전시관은 인류문명의 견본시장이 돼온 박람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다.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진보와 평화, 교육과 혁신, 교류와 협력이었다.

상상력의 한계를 넓힌 박람회 전시물과 조형물은 과학기술 진보를 이끈 영감의 원천이 돼왔다. 르코르뷔지에, 야마사키 미노루 같은 거장 건축가들이 박람회장 공간 조성에 창의력을 쏟아부었다면 토머스 에디슨, 헨리 포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발명가와 과학자, 기업인, 학자, 예술가는 박람회에서 성취동기와 아이디어를 얻고 성과물을 내놨다.

세계박람회의 효시는 1851년 영국 런던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 열린 ‘만국 산업생산물 대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다. 오늘날 국제질서의 근간인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새 장을 연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영국은 박람회 개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당대 최고 수준이던 자국 기술의 유출을 우려해 국제행사 개최를 꺼렸다. 대박람회 실현의 주역인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 덕분에 당시로선 뛰어넘기 힘든 벽이었던 국제행사가 열리게 됐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박람회는 프랑스의 주도로 문명의 백과사전이자 지구촌을 연결하는 과학·산업·문화 네트워크로 격상했다. 파리는 네 차례 박람회를 열면서 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도시 구조개혁을 이뤘다. 특히 1889년 파리 박람회는 기념조형물 겸 박람회장 출입구로 건립된 에펠탑을 불멸의 유산으로 남겼다.

박람회의 흐름은 산업 자본주의의 무게중심과 함께 움직여 20세기 들어 신흥경제권으로 일어선 미국이 주도하게 됐다.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 주요 도시에서 잇따라 박람회를 개최하며 도시를 개발하고 산업발전의 원동력을 마련했다. 국가주의를 기반으로 한 유럽과 달리 미국 박람회는 상업주의가 깊숙이 작용했기에 그만큼 대중성과 오락성이 두드러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박람회는 새로운 전기를 모색했다. 박람회가 그토록 찬양해 온 과학기술이 결국 인류에 총부리를 겨눴다는 반성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평화·협력의 정신 되살리기에 나섰다. 서방 일색이던 개최지가 다변화하고 인류의 공통과제를 논의하는 플랫폼으로 성격이 확장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1970년 오사카 박람회는 세계경제의 기운이 아시아로 넘어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일본은 당시 박람회를 통해 패전국에서 선진강국으로 부활했음을 선포했다. 이후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이 답보 상태였던 박람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로써 문화적 다양성의 자양분을 흡수한 현대 박람회는 공생의 문명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후반 대중매체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박람회는 자신이 세상에 내놓은 대체재와 경쟁하는 상황을 맞았다. TV·컴퓨터 등 전자매체와 놀이공원, 각종 전문박람회 등이 그것이다. 박람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람회는 늘 앞선 시대정신으로 세계를 이끌어왔다. 국경을 초월한 현안에 해법을 모색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등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시공간·인식의 확장과 체험·공유·상호작용 방식으로 전시 콘텐츠 또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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