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극장 밖에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2022년 한국영화산업 결산」에서 언급된 문장이다. 그간 영화는 ‘극장’이라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팬데믹 이전부터 극장산업 성장의 한계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시에 최고상을 받는 등 한국영화에 대한 대중적·예술적 위상이 최정점에 달했고, 한국영화는 마치 최정상에서 가장 화려하게 모든 걸 불태우는 듯했다.
글로벌 OTT플랫폼들은 팬데믹을 기회로 삼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코로나19로 인한 극장산업의 위축은 OTT 플랫폼의 사업 방향과 맞닿아 많은 영화 인력이 OTT로 이동하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양질의 OTT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엔데믹으로 진입한 지난해 한국 극장가는 어땠을까. 2022년 한 해, 극장산업의 불황 속에서도 ‘천만 관객’ 영화가 두 편(<범죄도시2>, <아바타: 물의 길>)이나 나왔다는 사실은 극장산업 회복에 대한 기대를 한껏 키웠고, 볼 영화만 있다면 관객은 언제든 다시 극장을 찾을 거라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플랫폼의 다변화로 관객의 선별적 영화관람 성향이 강해지고 작품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가 변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도 됐다. 게다가 높아진 관람 요금은 사람들에게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에 대한 경계를 명확하게 했다. 이에 극장은 ‘체험’과 ‘경험’에 더욱 방점을 찍으며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국가적 경계를 허물어버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서비스가 성장하면서 여러 나라가 디지털미디어산업과 이를 둘러싼 규제와 지원정책 그리고 미디어 환경 경험에 걸친 소비자의 변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많은 분석과 연구를 내놨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OTT산업의 등장과 확장이 기존의 콘텐츠 배급 또는 가치사슬 구조 변화를 넘어 보다 광범위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각국의 기존 미디어 환경과 제도라는 맥락 속에서 변화와 효과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글로벌 OTT서비스의 성장으로 기존의 방송 규제체계의 재편과 미디어 거버넌스 및 법제 개편 필요성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9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OTT가 영비법 체계 속에서 제도화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OTT 관련 핵심 제도인 ‘영상물 등급 분류’와 세액공제를 위한 법제에서 영비법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향후 영상 관련 법제 및 거버넌스 개편 논의에서 영비법 체계의 정비와 확장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영비법에 근거해 극장을 중심으로 한 영화정책을 수립해 온 영화진흥위원회의 공적 역할에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 영비법은 2006년에 제정돼 몇 차례 개정되기는 했으나, 급변하는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 산업과 법제도 간의 괴리를 해소할 수 있도록 전면 개정될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비디오산업을 독자적인 영상산업이라기보다는 영화산업의 가치사슬 중 하나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중심으로 포괄적인 접근을 하는 방식으로 규정해 유통방식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이 없도록 개념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거버넌스 체계의 방향성 모색을 위해 영화계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
성장하는 OTT산업과 함께 영화의 외연을 확장하고 경계를 뛰어넘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영화의 개념을 제시할 현실적 방안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