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배터리산업 분야의 경쟁이 격화되며 이를 둘러싼 주요국의 규제와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근거한 보조금 등 지원 정책을 앞세우고 있고, EU는 규제적 관점에서 「신배터리법」, 「핵심원자재법(CRMA)」 등을 제정하는 한편, 미국 IRA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를 통해 친환경 산업에 보조금 정책을 강화했다. 여기선 배터리 규제 중심으로 살펴본다.
배터리 규제에서는 EU가 한발 앞서 나가는 모양새다. EU는 최근 기존의 배터리 지침을 대체하는 새로운 배터리법을 제정했다(8월 17일 발효, 내년 2월 18일부터 시행). 「신배터리법」은 원산지에 관계 없이 EU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종류의 배터리에 적용되며, 배터리의 제조, 수입, 유통, 사용, 폐기물 처리 등 배터리 전 생애 주기에 걸쳐 다양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배터리의 수명·성능을 보장해야 하고, 탄소발자국 허용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배터리 제조 시 재생원료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 또 배터리의 원재료가 인권과 환경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채굴됐는지 점검하기 위해 코발트, 천연흑연, 리튬 등 핵심 원자재에 대해 공급망 실사를 해야 한다. EU시장에 배터리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모델, 용도 등 세부정보를 포함하는 디지털 배터리 여권이 필요하고, 배터리의 탄소발자국, 재료 성분, 재활용률 등을 라벨에 표시해 공개해야 한다. 한편 배터리는 재활용과 재사용이 가능토록 설계돼야 하며, 폐배터리를 의무적으로 회수하고 재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를 준수하지 않으면 EU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
미국은 아직까지 EU 배터리법과 같은 통합적 규제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대신 연방이나 주 단위로 다양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연방 차원에서는 배터리의 운송과 폐기물 처리에 대한 규제가 있으며, 일부 주에서는 배터리의 재활용과 재사용에 대한 규제나 성능과 안전성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중국은 올 8월부터 리튬이온 배터리 및 배터리팩, 이동전원, 전자통신 단말기용 전원 어댑터 및 충전기 등의 품목에 강제인증(CCC; China Compulsory Certification)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내년 8월부터는 CCC를 취득하지 않거나 인증마크를 부착하지 않은 배터리는 중국으로의 수출, 통관, 출고, 판매가 모두 금지된다.
배터리 규제는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적 목적에서 비롯된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는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에 필수적인 배터리의 생산과 사용에 환경적 문제와 자원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이러한 규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미국, EU 등의 공통적 목표는 배터리 공급망의 재편이므로 우리 기업으로서는 현지 생산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배터리 관련 현지 규제의 이행준수 및 규범 위반에 대한 위험 관리가 중요해진다. EU 배터리법은 배터리 전 생애 주기에 걸쳐 복잡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특히 유의해야 한다.
둘째, EU, 미국의 규제가 순환적 자원 활용, 안정적 원자재 확보 등을 위해 폐배터리 회수 및 재활용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폐배터리 회수 및 재활용 관련 기술의 확보와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EU 배터리법의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 강화에 유의해야 한다.
셋째, EU 배터리법을 시발점으로 배터리에 대한 통합적 규제가 세계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기업 내 배터리 규제 관련 이행준수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