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 배터리산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뜨거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배터리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전쟁이 한창인 데다 배터리가 탄소중립과 스마트모빌리티 사회의 핵심 인프라이며, 수년 내 메모리반도체시장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는 성장산업이기 때문이다.
그간 배터리산업이 취약하던 미국과 EU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신배터리법」을 각각 제정하며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배터리 경쟁 양상은 기업 간 경쟁에서 국가 간 생태계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어 K배터리 초격차 달성을 위해서는 민간·정부·국회가 원팀이 돼 대응하는 국가 총력지원체제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4월 대통령 주재 ‘이차전지 국가전략회의’에서 배터리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원할 총력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조세특례제한법」 투자세액공제율 상향 조정, 이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 등이 추진된 것은 산업 기반 확충을 위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지난 8월 1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IRA 시행 1주년 행사에서 IRA를 ‘제조업의 르네상스법’으로 지칭하며, IRA가 제조업을 되살려 미국에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역설했다. 미국청정에너지협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미국 내 청정에너지 제조시설에 2,700억 달러가 넘는 투자계획이 발표됐는데, 그중 절반에 가까운 1,300억 달러가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나왔다. IRA 시행으로 미국은 전 세계의 투자 자금과 일자리를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도 배터리산업의 초격차 확보를 위해 미국 IRA와 같은 파격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국회에서 한국판 IRA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배터리·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투자기업이 이익을 내지 못해도 투자 규모에 따른 세액공제분을 현금으로 환급해 주는 내용이 골자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투자 여력이 부족한 배터리 기업이 환급받은 현금을 기술·인력·시설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당부드린다.
배터리산업 인력양성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배터리산업이 급성장하며 인력 수요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업계는 우수인재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올해 ‘한국 배터리 아카데미’를 출범하고 내년부터 교육을 시작한다는 목표로 정부와 관련 예산을 협의하고 있다. 배터리 아카데미는 현장 맞춤형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각 지역 거점을 활용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종합 컨트롤타워를 구축할 계획으로, 인력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우수한 인력을 적시에 공급할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핵심광물의 안정적 확보와 공급망 안보는 배터리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우선 미국, EU, 일본과의 배터리 전략 제휴, 통상협력 파트너십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관 합동의 전략적 통상 대응도 매우 중요하며 한미, 한·EU 간 배터리 제휴를 제도화하는 노력도 병행됐으면 한다.
또한 인도네시아·호주·칠레 등 핵심광물 보유국과의 전략적 공급망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핵심광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광물 보유국의 수요에 부합하는 상생형 공급망 협력외교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핵심광물 확보를 위한 민간기업의 공급망 내재화 투자,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세제지원, 성공불융자, 자원협력외교 확대를 통한 프렌드 쇼어링 등 공급망 다변화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용 후 배터리 리사이클링을 통해 핵심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춰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사용 후 배터리 통합관리 체계 구축과 통합관리 특별법 제정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배터리 공급망의 공정경쟁을 위한 국제협력을 추진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5년은 글로벌 배터리시장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민관이 힘껏 노를 저어 나간다면 K배터리가 글로벌 1위의 국가핵심전략산업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