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화석연료에 기반해 성장해 왔지만, 이와 같은 성장방식은 지속할 수 없다. 우리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해주는 오늘날의 산업은 기후위기를 일으키도록 구축됐지, 기후위기에 대처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저감하고 기후위기 결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적응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기후)금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발표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종합보고서」의 일부인 「기후변화 저감 평가보고서(WGIII)」에서는 제15장 ‘투자와 금융’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물리적 위험’과 ‘전환 위험’을 다루고 있다. 먼저, ‘물리적 위험’은 자연재해로 인한 재산 손실과 생산 차질을 뜻한다. 공장·시설물과 같은 물리적 자산은 태풍, 폭우, 가뭄, 해일, 산불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생산이 중단되며 보험 비용이 증가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2050년 이후 본격적으로 물리적 위험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한다.
한편 ‘전환 위험’은 저탄소 산업으로 전환하지 못해 일어나는 자산가치 하락과 투자 감소를 의미한다. 이제는 기업의 가치 평가와 재무 전망에 기후위기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야 하는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금융기관은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능력에 따라 미래 자산가치를 평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자에게 뚜렷한 신호를 준다.
금융 부문의 기후대응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시의적절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 예컨대 일관되지 못한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이 지속되면 시장이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전환 위험을 피하려면 금융 흐름의 방향 전환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장벽인 정책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 보고서에서는 기온 상승을 1.5℃나 2℃로 막는 정책을 수립했다 해도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낮으면 전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파리기후변화협정 제2조 1항에는 모든 금융 흐름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위기 영향에 대한 회복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파리협정에 부합하도록 조성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금융’은 전 지구 규모에서 지역 규모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 대응에 투입하는 재원, 즉 ‘기후금융’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충분한 자금을 갖고 있음에도 기후대응을 위한 금융은 공급이 수요를 크게 밑도는 상황이다.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요 자금과 투자 자금의 차이를 금융격차라고 하는데, 2020년부터 2030년 사이에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연평균 투자를 2019년의 기후재원 수준보다 3~6배 더 키워야 이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분석한 2006년 「기후변화의 경제학」(‘스턴 보고서’)에서는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전 세계 GDP의 1~2%만을 지출하면 되지만, 지금 대응하지 않을 경우 기후피해로 인한 손실 비용이 전 세계 GDP의 20%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어떤 나라도 이 정도 규모를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사용하면서 정상적인 재정을 꾸려갈 수 없다. 세계 평균 방위비는 전 세계 GDP의 2.5% 정도라고 한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세계를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화석연료 기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재생에너지의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충분한 자금을 올바른 곳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금융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