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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일관성이 성 주류화의 핵심 원동력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 교수 2023년 12월호

필자가 스웨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정부를 대표해 외국 국빈을 모시던 40대 남성 장관이 오후 4시에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자녀를 탁아소에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행사장에 돌아온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이방인에게는 너무나 생소했는데 직장동료 말이 스웨덴에서는 평범한 일이라고 했다. 스웨덴에서는 가사분담에서부터 직장문화까지 성평등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2023년 스웨덴 노동중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의 성별 임금 격차는 9.9%로 한국의 31.1%에 비해 크게 낮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도 2021년 기준 78.6%로 남성의 80.5%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1970년대까지는 워라밸이나 직장 내 성 평등 이슈에서 스웨덴도 다른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지금같이 변혁하기까지는 1969년 올로프 팔메 총리의 역할이 컸다. 당시 42세였던 올로프 총리는 여성의 세금납부가 성평등 사회 구현의 핵심이라 보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유급 출산휴가 부여 및 육아수당 지급, 아동수당 인상, 방과 후 과정 운영 등의 가족정책 시행과 함께 성별 임금 격차 축소, 출산 후 복귀한 여성 근로자의 직장 내 차별 금지 등을 위한 입법을 차례로 해나갔다. 1957년 임금 수준과 연계한 연금개혁이 이뤄진 만큼, 여성도 임금에 비례한 세금을 납부해 적립금을 쌓아야 정년 후에도 배우자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법·제도 개선을 위해 1982년 성평등특별위원회를 조직한 것도 주효했다. 성평등특별위원회가 1988년 발표한 최종 보고서는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균등해지려면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돼야 하며, 이를 위해 여성의원 비율이 40% 이상 돼야 한다고 봤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후 좌파 계열 정당을 중심으로 여성의원의 비율이 대폭 늘어나 1988년 40%를 넘어섰고, 이후 한 번을 제외하면 그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여성장관 비율도 50%에 이른다. 

정치적 일관성도 돋보인다. 1988년 이후 35년 동안 좌파 정부가 23년, 우파 정부가 12년 집권하면서 정권이 4번이나 바뀌었지만 성평등과 연계한 가족정책, 복지정책, 사회보험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도리어 성평등 정책으로 서로 경쟁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이는 성공적인 성 주류화의 핵심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제도만으로 직장 내 성평등을 이뤄낼 수는 없다. 스웨덴 성평등청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 태도와 규범, 가치 정향 그리고 롤 모델에 대한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사회 전반의 성평등 실현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이 스웨덴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 직장 내에는 직원의 삶의 질과 가족의 행복이 건강한 직장생활로 연결되고 이것이 성과를 만들어내는 핵심이라는 합의와 이해가 형성돼 있다. 무엇보다도 채용과 인사를 담당하는 기업 인사팀부터 직장노조에 이르기까지 남성 위주의 직장문화와 규범이 바뀌지 않고는 성 주류화가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다. 결국 성 주류화는 법 제정부터 국가의 정책, 직장 단위의 실천, 언론의 캠페인, 학교 및 평생 교육에 이르기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하다.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고 승자가 되는 개혁이 최고의 개혁이라 정의했다. 이런 관점에서 성 주류화는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 된다. 성평등과 관련해 보조금 등 인센티브나 벌금 등 페널티가 필요치 않은 직장문화가 형성될 때 비로소 성 주류화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북유럽은 젠더리스 사회로 진입했다. 젠더가 더 이상 사회 이슈의 중심에 있지 않고 일상에 스며들었을 때 성 주류화가 완성된다. 무엇보다 성평등은 국가경쟁력 강화와 저출산 문제의 중요한 해결책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적극적 노력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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