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쏜살같이 달리는 고속열차인 KTX가 4월 1일로 개통 20주년을 맞았다. 2004년 KTX의 개통은 그야말로 우리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대전·대구·부산·광주 등 목적지에 따라서 기존에 가장 빠른 열차였던 새마을호보다 적게는 1시간, 많게는 2시간 가까이 소요시간을 단축하면서 그야말로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혀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경부·호남 고속철도 동시 개통으로 이른바 꿈의 고속철도 시대를 열기까지는 논란도 많았고, 고비도 적지 않았다. 국내에 고속철도 도입이 최종 확정된 건 1989년이지만 경부선과 호남선 등을 연결하는 고속전철 도입계획은 1970년대부터 일찌감치 거론됐다.
1977년 중앙일보엔 우리 정부가 일본 신칸센을 본뜬 최대 시속 210km대의 고속전철 건설계획을 검토 중이란 기사가 실렸다. 이 고속전철이 완공되면 4시간 30분이 걸리는 서울~부산 구간을 2시간 12분 만에 주파할 수 있다는 설명도 담겼다. 그러나 곧바로 수송 수요나 재원 조달 면에서 당분간은 실현이 어렵다는 당시 경제기획원과 교통부의 발표가 이어졌다. 1980년대 초반엔 서울~대전 구간에 먼저 고속전철을 건설하는 계획이 논의돼 고속철도 선진국인 프랑스와 일본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논의와 갑론을박이 이어지다 1989년 정부 차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1989년 도입계획 확정 후 개통까지 난항 이어졌지만
개통 5개월도 안 돼 승객 1천만 명 넘어서며 자리 잡아가
처음 경험하고 시도하는 고속철도 건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부실시공과 안전에 대한 우려 등으로 사업계획은 두 차례나 전면 수정됐다. 노선과 역 위치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엇갈린 의견을 조율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업 타당성을 놓고 정치적 공방도 치열했다.
고속열차 도입 역시 난항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테제베(TGV), 독일 이체에(ICE), 일본 신칸센의 3파전이 벌어졌다. 단순한 기종 선정이 아니라 차후 기술 이전과 국산화까지 염두에 두고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섯 차례의 평가를 거쳐 TGV를 최종 선정했다.
계약 금액은 당시 우리 돈 1조6,800억 원 상당으로 프랑스 제작 12편성과 국내 제작 34편성 등 총 46편성을 도입하게 됐다. 차량은 열차당 1천 명 이상 태울 수 있도록 20량 1편성으로 제작됐으며, 총길이가 400m에 달해 승강장 길이를 늘이고 차량기지도 더 크게 지어야만 했다.
고속철도의 대명사가 된 이름 ‘KTX’가 열차 명칭으로 확정된 건 2003년 말이다. 앞서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은 한국 고속열차의 이름을 짓는 대국민 공모와 철도 이미지통합(CI) 개발 등을 진행했다. 처음엔 ‘케이스타(K-Star)’, ‘비호(VIHO)’, ‘코라(KORA)’, ‘미렉스(Mirex)’ 등 여러 이름이 후보에 올랐으나 이미 1998년 고속철도 시스템의 명칭으로 제정돼 인지도가 높았던 ‘KTX’가 최종 낙점됐다.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독일, 일본, 스페인에 이어 세계 5번째의 고속열차 운행국가가 됐지만 개통 초기에는 시련도 적지 않았다. 아직 시스템이 안정화되지 않아 고장이 잦았던 데다 역방향 좌석과 비싼 운임 등이 논란이 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또 아직 국민에게 익숙지 않은 신교통수단이었던 탓에 초기엔 수요도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이 때문에 역방향 좌석은 요금을 할인해 주는 고육지책까지 동원됐다.
하지만 KTX는 압도적인 속도와 시간단축 효과를 앞세워 이러한 어려움을 단기간에 극복해 냈다. 개통 5개월이 채 못돼 승객 1천만 명을 넘어섰다. 2006년 말에는 하루 평균 이용객 1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듬해 4월 21일엔 누적승객 1억 명을 돌파했다.
2010년 11월 1일에는 동대구~경주~울산~부산을 잇는 경부고속철도 2단계 신선구간이 완공·개통되면서 경부고속철도가 모두 신선으로 연결되는 완전체가 됐다. 이어 2015년 4월 2일엔 오송~광주송정을 연결하는 호남고속철도 신선구간도 개통했다.
그동안 KTX 수혜권도 경부선과 호남선을 넘어 강릉선·중앙선·중부내륙선·전라선 등으로 대폭 확대됐다. 2004년 개통 당시 2개 노선 20개 역이던 것이 현재는 8개 노선 69개 역으로 크게 늘어났다. 누적 운행거리도 6억3천만km에 달한다. 이는 지구둘레(4만km)를 무려 1만5,800바퀴를 돈 것과 맞먹는 수치다. 운영편성 수도 2004년 46편성(828량)에서 지금은 103편성(1,246량)으로 2.2배 늘었다. 또 지난해 8월 31일에는 누적 이용객 10억 명을 넘어섰다. 우리 국민(5천만 명) 한 사람당 평균 20번 넘게 KTX를 탄 셈이다.
동력집중식에서 동력분산식 차량으로 세대교체…
시속 400km대로의 도약 추진
만 20세가 된 KTX는 새로운 전환기를 준비하고 있다. 맨 앞의 기관차가 객차들을 끌고 달리던 기존 방식(동력집중식)에서 객차 밑에 동력을 분산 배치해 달리는 방식(동력분산식)으로 교체가 추진되고 있다. 동력분산식이 가속·감속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다.
개통 초기부터 고속철도 시대를 이끌어왔던 KTX와 KTX-산천이 대표적인 동력집중식 차량이다. 국내에 도입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로는 2021년 1월 중앙선에서 선보인 KTX-이음이 있다. 최대 시속 260km로 강릉선과 중앙선, 중부내륙선 등을 오가고 있다.
KTX-이음을 뛰어넘어 최대 시속이 320km에 달하는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인 ‘EMU-320’도 머지않아 선보이게 된다. 현대로템이 제작한 차량으로 각종 시험운행 등을 거쳐 승객 수송에 투입될 예정이다. 정부는 앞으로 신규 도입하는 고속열차는 모두 동력분산식으로 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우리 고속열차는 시속 400km대로의 새로운 도약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시속 421km를 기록한 ‘해무(HEMU-430)’를 통해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시속 400km대 열차 도입과 운행을 위한 시스템 정비 등을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기존선 개량과 고속화 등을 통해 KTX 수혜권도 더 넓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요 도시들을 더 빠르게 연결할 수 있고,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인구도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말 그대로 고속철도로 더 촘촘히 이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