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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로 즐겁고 행복하다면 모두가 ‘성공한’ 덕후”
오세연 영화감독 2024년 05월호

부산에 사는 중학생 오세연은 어느날 TV를 보다가 한 스타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당시 세연과 친구들은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쇼! 음악중심〉을 매주 시청하며 함께 모여 음악방송 품평회를 열었다. 매주, 매달 좋아하는 사람이 바뀌던 때였다. 그때 세연은 우연하게 눈이 마주친 그 스타에게 푹 빠져버렸다. 팬카페 활동은 물론이고 부산이든 서울이든 공연만 한다고 하면 혼자 KTX를 타고 찾아갔다. 스타에게 자기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한복을 입고 사인회에 찾아가고, 나중엔 최애와 TV에 함께 나와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성공한 덕후 ‘성덕’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 난 노래 열심히 할게.” 이 말에 전교 1등까지 했다. 그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입학한 세연은 최애가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단 소식을 듣는다. 한순간 ‘성덕에서 실패한 덕후’가 된 그는 함께 그 시절을 경험했거나 어떤 누군가를 덕질했을 ‘또 다른 오세연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얼굴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기로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은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첫선을 보인 후 국내외 영화제를 거쳐 2022년 9월 극장가에서 전면 개봉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덕후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개봉 후 2주 만에 1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모두가 기다린 이 영화는, 누군가를 한 번쯤 좋아했거나 덕질해 봤을 우리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 〈성덕〉의 주인공이자 감독, 이젠 스타가 아닌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과 학생인 오세연 감독을 만나 덕질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들어봤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인가?
누군가를 무척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 같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팬으로서 해야 하는 ‘임무’도 많다. 이를테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애가 우승할 수 있도록 문자 투표를 하고 앨범이 나오면 홍보도 자처해야 한다. 그의 충실한 서포터가 돼 시간, 돈, 열정을 기꺼이 투자한다. 일방적인 관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우리에겐 그가 만든 노래나 말이 대체불가능한 힘, 일상의 활력을 줬다. 또 나와 스타를 동일시하게 돼 이 사람이 잘됐을 때 마치 내가 잘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나의 경우 재능과 외모, 가치관 모두 완벽한 것 같은 스타의 자랑스러운 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생 신분에 맞게 열심히 공부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다. 팬들 간의 관계도 중요하다. 정보를 공유한다거나 선착순으로 모여야 할 때 자리를 맡아준다든지 서로 돕는 관계가 되기도 하니까. 그로 인한 따뜻한 경험도 많다. 한번은 울산에서 열린 공연에 간 날 이모 팬이 부산 집까지 데려다준 적도 있다.

스타를 좋아하는 마음, 그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글쎄. 사랑이라 하기엔 애매하고, 그냥 응원이라 하기엔 집착에 가깝고, 그렇다고 믿음이라 하기엔 종교와는 다른 복잡미묘한 감정이랄까. 그렇게 된 데는 스타를 우상화하도록 만드는 산업의 전략도 한몫하는 것 같다. 팬이 보는 것은 산업이 만들어낸 시나리오 안에서의 스타라는 사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수백 가지 모습 중 가장 정제되고 가장 단편적인 몇 가지 부분들일 텐데, 보여지는 것이 그것뿐이니 ‘이 모습 그 자체가 이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요즘은 거기에 더해 친밀감을 느끼게 만든다. 스타의 창작활동을 넘어서 사생활까지도 덕질 요소로 만드는 거다. 일상에서는 민낯으로 다니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일대일 메시지 서비스를 통해 최애와 ‘현실말투’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해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하고 그 이미지를 확신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최애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거나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그 괴리감과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나의 경우 그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충격받을 만한 사건이었는데 심지어 그게 내 최애였다. 지치거나 외로울 때마다 큰 힘이 돼줬던 사람이었는데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니. 너무 충격적이면서 화도 나고 슬펐다.

사건이 터지고 몇 개월 후 영화를 찍게 됐는데.
일단 “내가 이런 사람의 팬이었다. 근데 문제는 내가 너무 성덕이었다.”라는 이 ‘웃픈’ 상황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일종의 거대한 탈덕 선언이랄까(웃음). 영화로 만들어보란 주변 권유도 있었고. 팬덤에 대해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처럼 성덕이었던 사람들을 찾아나설까 고민하던 때 친구들에게 이런 영화를 찍으려 한다고 말했더니 “야, 사실은 나도…”라고 고백하는 거다. 멀리 가지 않아도 주변에 누군가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말이 많다며 적극 나서는 친구도 있었고, 굳이 나까지?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열심히 이야기를 들려주더라. 여전히 분노하는 친구, 배신감은 느끼지만 부디 그가 잘못을 반성하고 죗값을 치른 후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친구, 더 이상 앞으로 누구를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친구, 또 누군가를 덕질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 스타를 좋아했던 시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지금의 심경을 토로하고 과거의 추억을 되새겨 보며 그 시간을 각자의 목소리로 정의해 나가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

영화에서 굿즈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과 어머니와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열심히 모은 굿즈를 하나씩 꺼내보며 추억을 이야기하고 작별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생각했다. 사실 이 영화 자체가 추억 장례식이다. 그런데 슬프기만 한 장례식은 아니고 웃음과 재치도 곁들이고 싶었다. 그렇지 않나. 왜 우리가 그 사람 때문에 울어야 할까. 물론 울 수 있지만 우리끼리 있을 땐 웃고 싶었고, 앞으로도 누구를 계속 좋아할 수 있어야 하니까 영화를 무겁게 끌고 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연출했다. 그리고 덕질에 푹 빠져 있던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 엄마에게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엄마는 한창 변덕스러울 나이에 무엇인가를 끈기 있게 좋아하는 내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한다. 엄마가 “스타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나의 잘못은 아니다. 덕후를 실패, 성공으로 나눈다는 것은 정하기 나름이고 중요한 건 좋아했던 과정이다.”라고 한 게 기억에 남는다.

사회가 팬덤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봐주면 좋겠나?
내가 덕질했을 때도 그렇고 팬을 ‘빠순이’로 비하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실 팬들은 한 사람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히 하는 ‘마음의 주체자’다. 누구의 팬이란 이유로 비하하거나 그 마음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한 명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팬덤활동이란 게 상당한 규모의 경제활동이다. 광고 모델을 뽑을 때 모델이 갖고 있는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팬덤도 고려해야 하는 시대지 않나. 세상의 많은 부분에서 팬덤이 작용하는 크고 작은 힘들이 있다. 그리고 ‘성공한’ 덕후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한 스타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더 이상 성덕이 아니게 되는 걸까? 덕질로 즐겁고, 행복했고, 열심히 살았고, 삶의 동력을 얻었다면 ‘성공한’ 덕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그럼에도’ 계속해서 누군가를 좋아할 힘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오늘 먹은 김치볶음밥이 너무 맛없다고 해서 평생 김치볶음밥을 안 먹는 건 아니듯이.

앞으로 어떤 성덕이 되고 싶은가?
영화의 성덕을 꿈꾼다. 영화 만들고 글 쓰는 자아를 잘 키우고 싶다. 특히 ‘사랑’과 ‘모순’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내용이 담긴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보면 〈성덕〉도 사랑과 모순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래도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 같다(웃음).
신정아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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