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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도록”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 대표 2024년 05월호

인생 첫 덕질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는 명함에 최애의 노래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을 새겼다. 그는 이 문구가 곧 회사의 철학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것(음악)과 일로써 잘할 수 있는 것(마케팅)의 교집합, ‘덕업일치’를 이룬 김 대표는 K팝이란 단어가 없던 시절부터 팬덤이 K팝 시대를 이끄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신에서 변하지 않은 건 음악을 즐기고 아티스트의 성장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한다.
 

음악으로 비즈니스를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좋아하는 음악과 전공인 마케팅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공연기획사 좋은콘서트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누구의 ‘연말콘서트’가 아닌, 성시경, 이소라, 박효신의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이나 싸이의 ‘올나잇 스탠드’ 등 공연에 서사를 만드는 브랜드 콘서트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후 서울음반,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등 큰 회사에서 상상밴드, 지드래곤, 조용필 등 여러 아티스트의 프로모션과 매니지먼트를 맡았고, 마흔에 스타트업으로 넘어가 메이커스의 딩고뮤직에서 ‘세로라이브(모바일 세로 화면에 맞춰 세로형 영상으로 촬영)’, ‘이슬라이브(술을 마시며 편하게 부르는 콘셉트)’를 기획·론칭해 히트했다. 이때 직감뿐 아니라 소셜미디어 데이터 분석도 필요하단 걸 배웠다. 

그간의 경험으로 ‘소속 가수 없는 기획사’로 불리는 회사를 차렸다.
소속사처럼 전속 가수만 키우는 게 아니라 드림팀처럼 브랜딩이 필요한 가수와 실력 있는 작곡가, 작사가, 영상감독을 연결해 흥미로운 프로젝트와 콘텐츠를 만들고자 스페이스오디티를 설립했다. 그렇게 해서 데이터상으론 상승세였지만 저평가받던 폴킴, 멜로망스의 재조명을 도왔다. 또 뉴트로 열풍이 불던 때 음악에서도 1970~1980년대 시티팝이 유행하는 것을 캐치해 요즘 가수들이 옛 노래를 재해석해 부르는 ‘디깅클럽서울 프로젝트’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제작도 진행했다. 그러면서 K팝 관련 소셜미디어 데이터들을 살펴보니 아티스트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음악을 만들고 알리는 것뿐 아니라 이들의 팬을 만들고 팬덤으로 확장하는 일도 중요한 축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비즈니스 영역을 팬덤으로 확장했다.

비즈니스에 데이터와 팬덤이 더해진 건가?
그렇다. 팬덤을 위한 소통플랫폼 ‘블립’과 K팝 데이터 전문플랫폼 ‘케이팝레이더’를 출시했다. 블립은 원래 아티스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용 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이 앱은 팬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고 하더라. 팬들이 ‘빠순이’로 폄훼되던 과거에는 덕질을 숨어서 했다면, 지금은 팬들이 각종 모니터링을 하고 리포트를 만들어 기획사로 보낸다거나 회사 소모임에서 덕질 일상을 PPT로 발표할 정도로 자기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문화로 바뀌었다는 거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과 아티스트를 더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서비스로 방향을 틀었다. 케이팝레이더는 업계뿐 아니라 투자사, 팬들이 아티스트 관련 소셜데이터 추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실제로 기획사들이 주간 회의나 굿즈, 콘서트 등을 기획할 때 활용한다고 하더라. 해외 팬의 경우 데이터에 민감한 편이라 음원 순위, 유튜브 영상 조회수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등을 체크해 자료를 보내주기도 한다.

축적한 데이터로 K팝시장 분석도 하고 있다고.
케이팝레이더 데이터로 매년 콘퍼런스를 열고 있다. 당해 K팝을 가장 많이 소비한 나라, 4세대 걸그룹이 가장 인기 있는 나라 등을 집계한 K팝 세계지도, K팝의 다음 세대, 올해의 K팝 마케팅, 트렌드 키워드 등 데이터를 통해 K팝 결산을 하는 자리다. 이 행사엔 기획사뿐 아니라 게임회사, 글로벌브랜드 담당자들도 관심을 보인다. 또 트위터(현 X)와 트윗량, K팝 관련 대화량 등을 모아 10년 치 K팝 성장 역사를 수치화해 보기도 했다. 최근엔 카이스트와 MOU를 맺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팬덤의 행동 연구와 K팝산업 분석을 하고 있다. 블립 데이터로도 시장 분석을 한다. 500명의 팬을 대상으로 팬이 된(입덕) 계기를 자유롭게 말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더니 세븐틴에 입덕한 이유 중 45%가 자체 콘텐츠 시청이었고, NCT는 30%가 퍼포먼스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건 기획사도 아티스트도 알 수 없는 팬덤의 속마음 데이터다. 이런 데이터를 아티스트별로 모아보면 팬덤과 아티스트의 성장 기록이 된다.

블립은 기획사의 팬덤플랫폼과 어떻게 다른가?
기획사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은 소속 아티스트에 초점을 맞춰 일대일 대화나 자체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한다면, 블립은 팬 중심으로 덕질을 돕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스케줄 기능이다. 대학생들이 에브리타임이라는 앱으로 시간표 관리를 하는 것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티스트의 일정, 이벤트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감상이나 덕질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다이어리 ‘팬로그’ 기능으로 나만의 덕질 공간을 꾸밀 수 있도록 하고 SNS처럼 팬끼리 공유할 수 있도록 했더니 서로 팔로우해서 나눔행사나 각종 이벤트를 자발적으로 하는 등 팬덤활동을 즐기고 있더라. 주 이용층은 1020세대이고 국내외 팬 비중은 4 대 6 정도다.

회사에 ‘덕잘알’ TF가 있고, 입사 지원할 때 덕질 이력서도 낸다던데.
비즈니스는 고객이 누구인지 정의해 그들을 탐구하고 니즈를 파악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 않나. 팬들이 요즘 어떤 방식으로 문화를 소비하고 즐기는지, 유행하는 밈이나 취향은 무엇인지 알아야 해서 덕잘알 팀을 만들었다. 사실 덕질은 공부한다고 될 게 아니다. 한 번쯤 누군가를 덕질해 봤다면 이 일을 일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즐기게 되지 않겠나.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마음을 위한 비즈니스니까. 그래서 채용 때 일반 이력서와 함께 덕질 이력서를 받고 있다. 그리고 덕질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1년에 60만 원씩 덕질 지원금도 준다. 개발자들도 아이돌 포토카드를 꾸며보기도 하고 생일카페에 다녀오기도 한다. 다들 재미있어 하더라(웃음).

앞으로 팬덤 비즈니스를 어떻게 확장해 나갈 계획인가?
팬덤을 만드는 일은 계속 중요해질 것이다. 테슬라, LG 등 대기업들이 주목하는 것도 팬덤 만들기다. 소비자가 어떤 경로로 호기심을 갖고 입덕해 구매하고, 자발적으로 창작·생산하며 팬덤으로 확장해 가는지 분석해 온 것을 토대로 앞으로는 어떤 아티스트든 팬을 만들어주고 부스팅할 수 있도록 하는 ‘팬덤 제조 시스템’을 만들어 기획사나 아티스트에게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려고 한다. 계속해서 신인 아이돌이 나올 텐데, 블립 유튜브를 아이돌 ‘입덕 콘텐츠’ 채널로 만들려고 한다. 최근 신인 아이돌 영파씨(YOUNG POSSE)의 보컬·예능·비주얼·멘털·퍼포먼스·팬사랑 등 요소별 성장기를 담은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해 붐업하는 ‘육각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앞으로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했으면 하나?
팬심의 경쟁을 부추겨 비즈니스가 되도록 하는 초동(앨범 발매 첫 주 판매량) 경쟁 문제가 해소됐으면 한다. 팬심과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척도로 음반판매량을 제시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게 K팝과 산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과연 맞나 싶다. 그래서 우리도 블립마켓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나가려고 한다. 또 상향 평준화된 K팝시장에서는 뮤직비디오 제작 하나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중소회사들을 위한 제작 지원과 같은 정책이 마련되면 좋겠다. 초기에 벼랑 끝까지 갔다가 BTS를 발굴해 크게 성장한 하이브처럼 중소형 기획사들이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건강하고 튼튼한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신정아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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