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나는 자전거와 텀블러, 반찬통, 장바구니, 수저 등등과 함께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중국에서 출발해 주로 자전거를 타고 동남아, 인도, 파키스탄, 중앙아시아와 이란을 거쳐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닿기까지의 1년 반 동안 일회용 플라스틱은 최대한 안 쓰는 제로(zero) 웨이스트, 실상은 레스(less) 웨이스트 여행을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에 초점을 맞춘 것은 플라스틱이 현대생활에서 제일 많이 쓰이면서도 재활용은 까다롭기 때문이었고, 플라스틱이 과도하게 남용되는 것은 아무래도 일회용 플라스틱(비닐 포함) 때문인 것 같아서였다. 나의 도전은 주로 식음료 영역에서 이뤄졌다. 1년 반 동안 그 흔한 생수 한 병, 과자 한 봉지 사 먹지 않았다.
“그게 돼요?”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답한다. “한국에서보다는 쉽던데요?” 여행을 나간다는 것은 일을 안 한다는 뜻이고, 고로 내 시간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물론 여행을 노동보다 빡빡하게 하는 이들도 있다지만, 여행 노동자들도 고용주에 매여 있을 때보다는 자기가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제로 웨이스트에는 사소한 여유가 중요하다. 텀블러나 장바구니, 반찬통을 챙길 수 있는 여유, 식당이나 가게에서 비닐이나 일회용기 말고 여기에 넣어달라며 직원에게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볼 여유, 사용한 텀블러와 반찬통을 씻는 여유가 필요하다. 주 5일 출근하고 집안일까지 하면서는 이 사소한 여유가 너무 힘들다. 생각대로 살지 못한다고 느끼던 사람들에게 여행은 생각대로 살아볼 수 있는 좋은 틈이 될 수 있다. 귀찮고 버겁게 느껴지던 사소한 실천들은, 여유가 생기면 내 일상을 살뜰히 매만진다는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여행에서의 시도로 얻은 자신감은 이후 돌아온 일상에서 약하게라도 실천을 이어나갈 힘이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로(zero) 웨이스트는 목표고, 현실은 레스(less)임을 아는 것이다. 완벽하게 제로를 실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제로만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라도 쓰면 망했다는 자책과 너무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어 그냥 살던 대로 살자 싶어진다(이것이 정확히 한국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해보려다가 실패했을 때 내 생각의 흐름이었다). 여행에서 내가 세운 목표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최대한 안 쓰되 내가 즐길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것, 때로는 쓸 때도 있을 거란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즐길 수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하나를 썼다는 죄책감보다는 하나를 아꼈다는 보람에 집중하기로 했다. 혹시나 플라스틱을 쓰게 된다면 버리지 않고 최대한 재사용해 보자 했다.
또 하나의 레스 웨이스트 여행 팁은 여행을 가는 지역 또는 나라에 대해서 알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역사 또는 음식, 미술, 음악, 언어, 혹은 사람과의 만남 등 자신이 관심 있는 어떤 테마라도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내겐 쓰레기도 테마였다. 가는 나라의 플라스틱 재활용 상황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재활용장 또는 쓰레기장을 들러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고리가 됐든 그를 통해 그 지역과 나라를 알고 연결되는 느낌이 들게 된다면 레스 웨이스트 노력에 더 힘이 실린다. 내가 여행을 하는 그곳과 그곳의 사람들이 더 이상 남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쓰레기를 하나라도 남기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게 더 의미 있어진다. 혹자는 이 거대한 흐름에서 이 쓰레기 하나, 나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세계에서는 그 하나가 아주 중요하다. 생각대로 살기 위해 아주 사소한 노력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어쩐지 가장 먼저 어루만져지는 것은 자책과 체념을 반복해 왔던 나의 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