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반려동물 장의사 박영옥 페트나라 대표. 1999년부터 20여 년간 그와 마지막을 함께한 반려동물은 약 5만 마리다. 유년 시절 학교 앞에서 입양한 병아리를 돌봐 닭으로 키워낼 만큼 동물에 애정이 많았던 반려인 박영옥 대표를 만나 반려동물 장례문화 전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반려동물 장의사가 됐나?
1999년 3월 당시 34살에 직장을 다니다 창업을 준비하던 때 반려견이 갑작스레 질병으로 사망해 사후처리를 고민했던 게 계기가 됐다. 다니던 동물병원에서는 사체를 병원에 맡겨 감염성 공동폐기물로 처리하거나, 불법이지만 야산에 매장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오랫동안 가족으로 함께 지냈는데 각종 의료폐기물과 함께 처리하면 후회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새벽에 몰래 야산에 묻었는데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계속 힘들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왜 동물 장례문화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 조사를 시작했다. 수소문 끝에 서울대 수의과대 동물병원 지하에 반려동물을 화장할 수 있는 화장로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당시 원장이던 권오경 교수에게 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화장로 이용을 허락받았다. 이렇게 국내 최초 반려동물 장례서비스 업체 페트나라가 1999년 9월 1일에 문을 열고, 내가 1호 반려동물 장의사가 됐다.
이 아이템으로 창업한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은?
대부분 이상한 시선으로 봤다(웃음). 심지어 그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다. 반려동물을 화장하러 간다고 하면 강아지 하나 죽었다고 유난을 떤다는 인식이 많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데도 반려동물을 위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동물병원을 일일이 방문해 전단지를 돌렸다. 창업 첫 달에는 6마리를 화장했다. 이후 다른 업체도 꽤 생겼는데 길게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 곳이 많다. 주위에서 우리도 1~2년 하다 말겠지 했지만 결국 끝까지 버텨냈다.
2002년엔 고발을 당했다고 들었다.
환경법이 강화돼 도심 내 화장이 어려워지면서 2001년 서울대 수의과대 화장로가 폐쇄됐다. 이후 경기도 김포에 자체 화장로를 마련했고 김포시청 환경과에 허가를 받았다. 마침 우리나라가 보신탕 이슈로 해외 동물애호가들로부터 비난받던 2002년 한일월드컵 시기여서 국가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동물화장이 주목받을 때였다. 그런데 폐기물 업체에서 동물화장이 불법이라며 나를 검찰에 고소했다. 자신들의 일을 뺏긴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은 종결됐지만 허가받고 운영한 것인데도 불법이라는 오명을 얻어 상처를 많이 받았다. 반려동물 장례업이 법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2008년 반려동물 화장이 합법화되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동물 장묘업 등록이 법제화되며 반려동물 사체는 장묘업체를 통해 화장할 수 있게 됐다. 2008년 당시 전국에 허가받은 동물 장묘업체는 4개였다. 이색 직업이라고 방송에 노출돼 문의 전화가 끊임없이 왔다. 이런 서비스를 해줘서 고맙다고 전화하는 반려인들도 있었다. 창업 이후 먹고살 정도로만 수익이 유지됐는데 합법화 후에는 매출이 꾸준히 늘었다.
창업 당시와 현재 반려동물 문화·산업 전반의 차이는?
당시는 동물을 가까이 두고 즐거움을 얻기 위한 ‘애완동물’로 키웠다면, 이제는 사회가 개인화되면서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가족처럼 함께하는 ‘반려동물’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개념이 바뀌면서 SNS를 통한 반려동물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고 반려동물 전용 호텔, 유치원, 산책, 목욕서비스를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가 발전했으며, 반려동물 전문 영양사, 사진작가(펫토그래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 새로운 관련 직업이 생겨났다. 이와 함께 반려동물과 반려인을 이해하는 사회적 공감대도 확대됐다. 내 분야를 예로 들면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장례에 지인들이 함께하며 슬픔을 위로해 주고, 반려동물 사망으로 상실감을 겪는 펫로스 증후군도 이해하는 분위기다.
일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서울에 홀로 살던 어르신의 반려견이 사망해서 그 자녀들에게 연락이 왔다. 집으로 방문해 사체를 갖고 나오는데 반려견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어르신이 갑자기 뺨을 때리며 왜 데려가냐고 막아섰던 일이 있었다. 또 한 대학 교수가 고양이를 화장해서 유골을 가져간 후에도 밤늦게 몇 번이나 전화해서 반려묘의 죽음을 재차 확인하는 등 당시에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던 분들이 생각난다.
펫로스 증후군을 슬기롭게 극복할 방법이 있을까?
대부분의 보호자는 반려동물 장례 과정을 통해 위로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별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보호자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부정하고 상실감을 느끼며 분노하다 서서히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단계를 거치는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다. 이럴 땐 가까이서 공감해 줄 수 있는 지인이나 반려동물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슬픔을 공유하며 위로받고, 펫로스 관련 서적을 읽거나 관련 전문가 상담을 통해 극복하는 걸 추천한다.
길고양이 돌봄시민(케어테이커), 유기동물보호센터 등에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장례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들었다.
주변에 유기견, 유기묘 구조와 케어, 동물학대 방지 등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활동가들이 많다. 무책임하게 버림받거나 사람의 학대에 힘든 세상을 살다 가는 동물들도 마지막 가는 길만큼은 차별 없이 존중받도록 하자는 것이 창업 때부터 지켜온 소신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비를 털어 동물을 보내주는 활동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작은 마음이다.
반려동물 장례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선진국은 반려동물 화장, 매립 등 장례 비율이 60~65%인데 우리나라는 15~25%만 화장하고 있다. 향후 화장 수요가 50~60% 수준까지 늘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미 관련 시장은 포화상태라고 생각한다.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장묘업체는 지난 8월 기준 75곳으로 2022년에 비해 7개 늘었고 미인가 업체도 많다. 수도권에만 29개인 데다 화장로 가동률 역시 수도권 업체 몇 곳만 70~80% 수준일 뿐 나머지 85% 이상은 30% 미만이다. 이런 와중에 몇몇 지자체에서 공공화장시설을 준비하고 있고 샌드박스 규제 특례로 이동식 화장 차량까지 시범 운영 중이다. 그야말로 초과공급 상태다. 그래서 일부 장례식장에서는 24시간 운영하거나 고급 목재를 사용한 관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등 무리한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 장례 인프라를 늘리기보단 지자체가 기존 장묘업체와 협의해 취약계층 반려인 대상 동물 장례비를 지원하거나 지역주민에 비용 할인 혜택을 제공해 과잉인 장묘시설 가동률을 올리는 것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현재 장례식장을 위탁운영 맡겼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1세대 업체로서 당시에는 반려동물을 화장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다음 세대 업체가 늘어나며 고객 니즈에 맞춘 동물 장례식장의 고급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들의 고객 응대 등 많은 변화가 있다. 이제 내 역할은 다한 것 같아 내 뜻에 공감하고 진정성 있게 동물 장례문화를 성숙시킨 회사를 만나 인계했다. 지금은 전국 11개 장례업체 대표들과 ‘한국동물장례문화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여러 기관과 연계해 건전한 반려동물 장례문화를 정착시키고 지역사회의 유기동물 및 차상위계층 반려동물 장례비용을 지원하는 등 반려동물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끝으로 아직도 감염성 폐기물로 처리되는 동물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공공 차원에서 공동화장시설을 운영하도록 돕거나 비즈니스 모델로 공동화장장을 운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