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작은 농촌에 위치한 식품회사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 최초로 냉동김밥을 개발해 마켓컬리 등 온라인 마켓 입점은 물론 20개국에 수출까지 하고 있는 복을만드는사람들(이하 복만사)이 그 주인공. 농촌에서 기회를 찾아 우리 농산물로 만든 냉동김밥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조은우 대표를 만나봤다.
하동에는 어떻게 내려오게 됐나.
서울에서 죽 프랜차이즈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죽집을 할 당시 아기에게 주려고 소금간을 하지 않는 손님을 만나며 배달이유식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알아보니 식품제조가공업을 하려면 농촌이나 도시 외곽으로 가야 했다. 당시 자본이나 인프라가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지인이 하동에서 해당 사업을 하는 이강삼 슬로푸드 대표를 소개해 줬다. 이 대표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2011년 하동으로 귀촌해 사업을 시작했다.
냉동김밥을 아이템으로 선택한 계기는?
처음에는 하동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보니 천안 호두과자, 통영 꿀빵처럼 하동을 대표하는 간식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역 특산 간식은 역사와 전통 등 시간적 조건이 필요해 빠르게 성장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치즈스틱으로 아이템을 바꾸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납품도 했는데, 치즈스틱에 들어가는 치즈는 수입산이고 빵가루는 대기업 제품이다 보니 하동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사업은 아니었다. 우리 농산물이 많이 쓰이는 아이템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2018년 일본에서 ‘김밥[한국식 노리마키(김초밥)]’이라는 이름으로 냉동김밥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김밥을 얼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여기서 얻었고 K푸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우리 농산물 소비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과감히 도전했다.
지역경제를 위해 사업 아이템을 바꾼 것이 인상 깊다.
이강삼 대표의 영향이 컸다. 이 대표는 식품제조가공업은 농촌의 농산물을 활용하는 국가 기반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보조사업의 수혜를 받는 것이라며, 지역 농수산물을 잘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여 농가 소득을 올려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래서 농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나 스스로를 농민이라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
냉동김밥 후발업체들도 많아졌다. 복만사 제품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김밥은 손이 많이 가는 제품이다. 정성을 들여 가능한 한 국산 식재료를 많이 쓰고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우리의 차별성이다. 냉동김밥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며 안타까웠던 것은 가격경쟁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 가격경쟁을 하면 품질이 좋아지기 어렵다. 예를 들어 김밥이 잘 풀어지거나 터지고 질 낮은 수입산 재료를 쓰게 된다. 우리는 이 사업을 시작할 때 한국의 문화를 팔아야겠다 생각했다. 국산 재료로 양질의, 보기에도 좋은 제품을 만들어 우리 음식문화를 알려야 장기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식품은 트렌드에 민감해 그에 맞춰 대응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산업이다. 유행하는 레시피나 니즈에 맞춰 신제품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비건이라는 소구점 그리고 저칼로리, 고단백, 간편한 김밥 등 소비자들이 원하는 트렌드를 기술력으로 빠르게 상품화한 것이 비결이다. “비건식인데 이렇게 맛있어?”, “칼로리가 낮아서 다이어트에 좋아” 같은 후기들이 온라인 마켓에 노출되면서 첫 입점한 마켓컬리 외에 다른 온라인 마켓으로도 확장할 수 있었다. 또 국내에서 인기를 끌다 보니 해외 바이어들도 주목하게 돼 수출로까지 이어졌다.
해외시장 매출은 어느 정도 되나?
미국, 캐나다, 유럽 등 20개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2022년에 50만 달러, 2023년에 120만 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는 400만~500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트레이더조의 냉동김밥을 유명 틱톡커가 시식하는 영상이 화제가 된 것을 계기로 미국시장에서 제일 잘 팔린다. K문화가 더 확산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언제든 이런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 할랄인증, 유대인들을 위한 코셔인증 등을 미리 받아놨다.
트레이더조에는 원래 복만사가 입점할 계획이었다고.
2021년 7월 열린 식품박람회에서 만난 해외바이어 중 하나가 트레이더조였다. 1년 정도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현지에 맞게 레시피의 완성도를 올렸고, 양산을 위한 미팅까지 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 생산물량으로는 트레이더조에 납품을 할 여력이 없었다. 기존 거래처 물량으로도 꽉 찬 상황이었다. 그래서 구미의 업체를 소개하며 그쪽을 접촉하면 빠를 것이라고 안내했다. 당시는 아쉬운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또한 잘한 결정이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욕심을 내고 기다려달라고 했다면, 그래서 미국 출시가 늦어졌다면 냉동김밥이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는 지금의 기회가 왔을까 싶다.
하동 지역민과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나.
창업 초기에는 지역 농가의 농산물로 제품을 생산했다. 하루에 몇천 개 만들 때라 농가와의 계약재배로 가능한 규모였다. 그런데 사업이 확대되며 바이어들의 식품에 대한 검증 서류가 많아지고, 필요한 물량도 커져 지역 농가가 이러한 조건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현재는 지역의 개별농가와 거래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지역 농식품 기업이 우리 김밥에 들어가는 제품을 가공해서 납품하는 로컬푸드 사례를 만들고 싶어 이들에 이런 사업 아이템을 안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버섯농가에서 재배를 넘어 2차 가공을 하면 우리는 그 제품을 사용할 용의가 있다. 그런 것들이 행동으로 옮겨진다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모범사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농촌지역에 자리 잡은 장단점을 꼽는다면?
단점이라고 한다면 고용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거다. 또 공단이나 식품클러스터와 달리 교대근무가 어려운 환경이라 하루 8시간만 공장을 돌리기 때문에 생산량을 추가로 늘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장점은 지역의 유대관계가 끈끈해 어려움이 있을 때 주변에서 빠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냉동김밥 성공스토리가 복만사에만 맞춰져 있는데 주위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경남 농업기술원의 1인 간편식 개발사업에 선정돼 생산시설을 갖출 수 있었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수출바우처 사업이나 포장지 생산 등을 지원해 줬다. 경상남도청에서는 공장 증설은 물론 전 세계 김밥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해 든든하다. 대한민국 농민, 공무원, 유관기관 등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능한 성과였다.
더 많은 이가 농촌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은 뭘까?
젊은 농민 사업가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많이 만들어지고 알려져야 한다. 아무래도 자본으로 움직이니깐. 지금 젊은이들은 신기술이나 특별한 아이디어를 갖고 농촌에 들어온다. 이런 것들은 모두 새롭기 때문에 기회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 그런데 정책자금이 보통은 연초에 신청을 받아 소진된다. 트레이더조 때처럼 7~8월에 기회가 오면 시설 증설 등을 위한 금융지원을 받기 어렵다. 농촌에서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지원하는 특별자금이 있다면 농촌에서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만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냉동김밥으로 성공하니 주변에서 주먹밥도 하고 볶음밥도 하면서 종합식품회사로 키우라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카테고리에 집중하고 싶다. 김밥 하나로 최고의 회사를 만들어, 김밥계의 델몬트 같은 회사가 되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