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이른바 ‘힙한(멋있다는 뜻의 ‘hip’에 ‘하다’를 붙인 신조어)’ 문화에 민감하다. 이들이 힙한 문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고유한 개성과 감각’이다. 즉 남들이 다 하는 걸 그저 따라하는 건 힙한 게 아니다. 자신만의 경험이나 스타일을 찾아내고 드러내는 것이 힙한 문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남들이 음원을 들을 때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을 꺼낼 때 필름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최근 독서에 불고 있는 이른바 ‘텍스트 힙(text hip)’도 이 흐름 안에서 이해되는 현상이다. 모두가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책을 읽는 건 완전히 차별화된 경험이기 때문이다.
글보다 영상이 익숙한 MZ세대가 이제 정반대로 책을 끼고 다니며 좋은 구절들을 필사하고, 각종 도서 전시를 찾아다니며 때론 독서 모임에도 참여하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반갑다.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텍스트 힙은 책을 읽는 아날로그적 차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를 찍어 SNS를 통해 공유하는 디지털로 나아간다. 이는 SNS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또 타인과 그걸 공유하며 소통하는 게 익숙한 MZ세대의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지만 그 전파 효과는 강력하다. 좋아하는 구절을 찍거나 필사해 올리면 댓글 창에 공감을 표현하는 글이나 이모티콘들이 달린다. 그리고 게시물들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전파된다. 책을 만드는 출판업계로서는 이만큼 반가운 일이 있을까.
사실 출판업계의 불황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는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터져 나왔고 짧은 시간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소비 트렌드, 이른바 스낵컬처화된 베스트셀러 문제 등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고착화돼 책은 이제 보편적인 문화가 아니라 ‘읽는 이’들만 읽는 특정한 문화가 돼간다는 출판가의 푸념들까지 나왔다.
하지만 텍스트 힙이라는 새로운 독서 트렌드의 등장과 더불어 출판업계에도 생기가 돌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에 열린 국내 최대 규모 책 축제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약 15만 명이 방문했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15% 정도 늘어난 수치다. 또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열렸던 ‘2024 서울야외도서관: 책 읽는 서울광장’은 방문객이 200만 명을 넘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책을 보다 일상 가까이 다가오게 하려는 이 같은 노력들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노벨문학상 작품을 우리 언어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물론 텍스트 힙은 SNS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더 클 뿐 실제 독서인구가 느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또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의 영향도 적지 않다. 그들이 올린 책 읽는 사진들이 MZ세대에 힙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적 시선들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텍스트 힙 같은 트렌드가 가진 긍정적인 의미를 폄훼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여겨진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책을 가까이 한다는 것 자체가 독서문화에는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었는가 아닌가로 그 독서가 진짜냐 아니냐를 나누는 문화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단 한 줄을 읽어도 그 글귀가 주는 감흥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왜 독서가 아닐까. 독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