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BS 다큐멘터리 <독자생존(讀者生存)>이 방송됐다. ‘읽는 자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진정으로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독서가 교양이나 입시를 위한 도구를 넘어 미래 사회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라는 주장을 담았다. 매년 독서와 문해력에 관한 다양한 방송이 제작되고 사회적 관심을 받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독자생존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비독자의 수가 증가하다 보니 어휘력 부족이나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문해력 부족의 문제를 알리는 뉴스 기사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에 대해 말하려면 ‘유튜브 보면 책 한 권도 3분 안에 다 요약해 주는데 책을 왜 읽어야 해요?’, ‘독서라는 말만 들어도 숙제 같고 따분해요’라는 비독서의 논리를 넘어서야만 한다. 특히 독서는 물론 글쓰기, 영상 제작까지 놀랍도록 빠르게 해내는 AI의 기술력은 독서의 필요성에 근본적인 회의를 던지고 있다.
생성형 AI는 이제 인간이 접할 수 없는 수많은 자료를 검색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교한 글쓰기까지 대신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독서가 더는 필요 없는 것일까? 독서전문가 메리언 울프는 우리가 외부의 플랫폼에만 의지하게 될 경우 내부 플랫폼을 강화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복잡 다양해진 현대 사회는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는 공감 능력이나 수많은 정보의 신뢰성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비판적 사고력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그러나 AI에만 의존해 우리 내부의 배경지식을 확장하지 못할 경우 거짓 정보를 판단할 능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찾기 어려운 ‘AI 같은 인간’이 양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책 읽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긴 시간 텍스트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우리 뇌가 활성화되고 우리의 배경지식이 확장되며 상상력이 날개를 펴는 시간이다. 새로운 정보를 좇아 떠돌아다니던 뇌가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책을 읽기 전에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며, 이 경험은 강력하게 뇌리에 박혀 인식의 폭을 넓히게 된다.
물론 훌륭한 영화나 동영상을 볼 때도 이와 비슷한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매체는 시간의 저 너머로 장면들이 순간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장면들을 붙잡느라 깊이 있는 사고를 할 틈이 없다. ‘등장인물의 얼굴에서 깊은 고뇌와 상념을 읽고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하고 과거의 경험을 인출할 새도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한다. 영상매체 읽기에서 독자는 2배속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것 외에는 어떻게 읽을지에 대한 선택권이 별로 없다. 반면 책을 읽을 때에는 언제 어디서 읽을지, 얼마나 빨리 읽을지, 다시 읽거나 돌아가서 읽을지가 전적으로 독자의 선택에 달렸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독서할 때 매우 능동적이며 깨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독서는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우선 책에서 멀어진 이들은 주변에 책이 보이면 책장을 넘겨 책의 목차라도 훑어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림이 많고 얇은 책도 좋고 평소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의 책도 좋다. 그리고 주1회, 30분이라도 일정한 시간을 확보해 독서가 습관이 되도록 해나간다. 나만의 작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좋다. 가족, 직장동료와 함께 북카페, 북스테이 등을 방문해 보자. 읽은 책과 관련해 대화를 나눌 이가 있으면 더욱 좋다.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르는 어휘의 의미를 확인하고 글의 의미를 꼼꼼하게 생각해 본 뒤 나의 언어로 말해보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AI 시대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오히려 더욱 중요해진 독서와 문해력의 힘을 길러나가길 원한다면 지금 즉시 내 곁에 있는 책에 손을 뻗어 책장을 넘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