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과 76. 한강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 번역·소개된 언어와 종수다.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여러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해외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이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번역이 우리 문학과 문화예술의 세계화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예상보다 많은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소개돼 세계 독자들과 만나왔다는 데 놀라기도 한다.
한국어는 아무리 크게 늘려 잡더라도 사용자가 1억 명이 채 되지 않는 ‘소수어’다. 게다가 중국이나 일본처럼 근대 이전부터 언어와 문화가 소개된 것도 아니다. 근대 이후 식민지배로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이념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서 일궈낸 문화 토양도 썩 풍요롭지 못하다. 따라서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세계문학이라는 커다란 나무가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향해 뿌리를 점점 뻗어나가, 거기서 빨아들인 자양분으로 키워낸 굵고 가는 가지들이 다양한 맛과 향의 열매로 결실을 거두는 바른길을 잃지 않았다는 반증인 동시에 ‘작은 나라’ 한국이 세계인들의 문화자산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기에 충분하다는 보증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번역은 ‘언어와 문화의 다름’을 문학이라는 장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서로가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해준다. 이를 위해 번역가는 ‘다른’ 언어와 경험을 담은 작가의 시선과 생각을 매만지고 되새겨 다른 세계의 독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희망의 ‘닮음’을 번역 작품에서 찾아낼 수 있도록 오랜 시간 공들여 다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는 번역 작업에는 삶의 모든 부면을 아우르는 직간접적인 경험과 통찰이 수반돼야 한다. 따라서 번역가는 서로 다른 두 세계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넓은 시야와 깊은 지식을 쌓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기 위해 쉬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 다듬는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번역과 번역가를 향한 우리의 관심이 우리 문학을 세계문학의 한 축으로써 성장시키는 지원정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훌륭한 우리 작품들이 더 많이 번역될 수 있도록 번역출판 부문의 지원이 비약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또한 좋은 작품을 발견해 훌륭한 번역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고급 번역전문가를 체계적으로 길러낼 교육훈련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운영하는 번역아카데미는 문학번역 역량을 기르는 전문 교육과정을 15년 이상 운영해 1,500명이 넘는 원어민 신진번역가를 배출했고 많은 이들이 문학예술 분야 전문번역가로 활약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 독자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부응해 향후 지속적으로 우리 문학이 번역·소개되고 우리 문학에 대한 비평과 학술 담론이 활성화되려면 더 많은 번역전문가들이 번역 분야뿐 아니라 교육, 연구, 문화콘텐츠 기획 등 산업·학술 부문을 아우르는 전문가로 활약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지원하는 공식 교육체계가 절실하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세계인들이 우리 문학과 문화예술 콘텐츠를 아끼고 함께 즐기는 지금의 반가운 현상을 우리 스스로 간절한 기회로 삼아 국가 위상에 어울리는 문화 부문의 역할, 곧 인류문화자산을 풍요롭게 해야 하는 선진 국가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