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승진하는 동안 나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결혼과 육아는 기쁨도 주었지만 절망과 자괴감에 더 자주 빠지게 했다.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내 인생과 엄마로서의 삶을 병행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우는 아이를 안고 함께 지새운 밤이 숱하게 쌓여갔다. 고맙게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아이들은 제법 사람 구실을 할 만큼 컸다. 그러나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의 모습은 희미해져 갔다. 초라한 삶으로 인생이 끝날까 봐 불안하고 초조했다.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캐나다에 가서 공부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학비를 내고, 살 집도 계약하고 모든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상상도 못 할 일이 일어났다.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덮었다. 어렵게 시작한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인간을 탓해야 하나, 박쥐를 탓해야 하나’ 하며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까지 16년을 공부했지만, 내가 처한 삶의 문제를 푸는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배운 공부는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헤르만 헤세)
나는 오랫동안 알 속에 갇혀 있었다. 깨뜨려야 하는 껍데기가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그것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진짜 공부’를 하면서부터였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철학을 배우고 책을 읽으면서 그 전과는 전혀 다른 공부를 하게 되었다. 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이 울림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니체’와 ‘헤세’는 암흑 속에 있던 나를 길어 올려주었다. 처음 만났지만 마치 날 위로하기 위해 예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친구 같았다. 헤세는 인생은 고난을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나를 토닥였고, 니체는 당연했던 사유들의 전복을 선사했다. 덕분에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알은 현실을 부정하는 마음이었다. 특별하고 대단한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현실에 만족하거나 충실하지 못했다.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환상으로만 가득 차 있어서 오늘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유행가의 가사로만 알았던 ‘아모르 파티’는 니체의 사상이었다. 니체는 내게 말했다. 길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같은 길은 존재하지 않기에 오직 자신만의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고. 그러니 주어진 나의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라고.
“이것이 삶이더냐? 그렇다면 다시 한번!”(프리드리히 니체)
단 한순간이라도 니체처럼 외칠 수 있을까? 괴로운 순간까지도 끌어안으며 긍정할 수 있을까?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니체처럼 힘든 순간까지 긍정할 수 있는 초인도 아니다. 그러나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과거나 미래에 있는 내가 아니라 현재에 서 있는 나를 마주하며, 현실에 발 딛고 살아보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이제는 엄마이자 노동자로 산다. 현실은 녹록지 않고 밥벌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깨고 나온 알이 무엇이었는지도 반복되는 하루에 치여 잊고 살아간다. 이 원고를 쓰면서 니체와 헤세의 책들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그때의 감동이 고스란히 다시 끓어올랐다. 지쳐 있는 나에게 여전히 그곳에서 말을 걸어온다.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프리드리히 니체)
길섶마다 숨겨진 행운을 찾는 삶이라면, 지치고 힘든 와중에도 기대와 설렘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행운을 발견하기 위해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즐기며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을 거슬러 온 친구들은 오늘도 나에게 따스한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