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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딘가에 함께 머물렀다는
박태하 『전국축제자랑』 저자 2025년 01월호


어느 초겨울날, 아내인 김혼비 작가의 지역 도서관 강연에 따라나섰다. 이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기사(driver & knight)를 자처해 함께 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국내 여러 도시·지역의 생김새와 그곳에서의 삶을 관찰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시선의 각도-온도-밀도 면에서 김혼비와 함께여야 그 관찰이 풍성해지고 또 그만큼 신이 나기 때문이다(『전국축제자랑』을 함께 쓸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김혼비는 무척 바쁘고 귀소본능이 어마어마한 데다(“가서 놀다 올 것도 아니고 끝나자마자 서울 오는 차 탈 건데”) 과하게 미안해하는 타입이라(“바쁜 너를 끌고 오가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동행을 허락해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이런 사람을 끌고 『전국축제자랑』을 쓰러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그날은 그런 김혼비가 모처럼의 ‘1박 동행 여행’을 승인한,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날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경북 안동에 들어섰다. 이 도시에 대한 좋은 기억을 재잘거리며, 이번 여행의 계획을 종알거리며 도착한 곳은 강연이 열릴 안동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댄 뒤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좀 때우기로 하고 도서관 정문으로 나오다 별 생각 없이 뒤를 돌아봤는데, 그 예기치 못한 공간과 상황에서 그야말로 덜컥, 마주치고 말았다. 그렇게도 만나고 싶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혹시라도 마주치면 나는 어쩌나 수줍게 인사를 건넬까 반갑게 와락 달려들까 새침하게 본 체 만 체 할까 고민하게 했던, 아니 일단 실물은 어떻게 생겼을까부터 너무 궁금했던…… ‘거리뷰 촬영 차량’과 말이다!

지리 애호가에게 인터넷 지도, 그중에서도 거리의 실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로드뷰(카카오맵)와 거리뷰(네이버 지도)는 그야말로 일상 필수품이자 최고 장난감 되시겠다. 널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지만 감상에 빠져 있을 틈이 없었다. 360도 사진을 찍고 있을 차량은 도서관을 나와 반대편으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김혼비에게 저 저 저 저것 좀 보라고 닦달하면서, 멀어져 가는 차량을 향해서는 팔을 올려 천천히 흔들어 주었다. 재밌는 포즈를 남기기에는 순발력과 용기가 부족했지만, 너무 팔을 촐싹파닥거리면 사진이 흔들려 못 쓰게 될 수 있다는 계산은 용케도 한 순간이었다.

그 뒤로 안동도서관 앞을 얼마나 (거리뷰로) 서성였던가! 몇 달 뒤 드디어 업데이트된 거리뷰에서 우리를 발견했다. 손 흔든 장면은 쓰이지 않았다. 차량은 우리 눈에 띄기 전에 도서관 주차장에 진입해 한 바퀴 돌았던 모양인데, 덕분에 주차 후 차에서 내려 서성거리며 두리번대는 우리 모습이 몇 장 찍혀 있었다. 눈에 익은 패딩과 몸의 각도가 반가웠고, 뿌옇게 블러 처리 된 얼굴 위로 우리만 그릴 수 있는 그날의 표정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좋아하는 대상인 ‘지도’에 등장했다는 점은 영광스러운 한편, 우리가 어느 낯선 곳에 행복한 기운을 안고 함께 머물렀다는 작은 증거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어딘가’에 이스터에그처럼 살짝 숨겨져 있다는 점은 짜릿하고 흐뭇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항상 미소 짓게 된다. 아, 주차장 사진이라 더 좋았던 건 『전국축제자랑』을 쓰느라 함께 전국을 누빈 우리의 9년 차 애마 ‘케봉이’도 함께 얼굴을 비췄다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종종, 2023년 12월의 안동도서관 주차장으로 거리뷰 여행을 간다. 김혼비가 “가서 놀다 올 것도 아니고 끝나자마자 서울 오는 차 탈 건데, 바쁜 너를 끌고 오가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라고 말한 뒤에 혼자 훌쩍 떠나고 나면, 좀 시무룩해 있다가 저 사진을 보고 기분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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