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임금체계 개편은 ‘통상임금과의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 휴업수당 등 각종 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인건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해 ‘확실한 통상임금’인 기본급을 축소하는 대신 각종 상여금·수당 항목을 만들어 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2018년 한 대기업은 생산직 평균 연봉이 8천만 원에 육박했지만, 기본급을 지나치게 낮추고 상여금 비중을 높이는 기형적 임금구조 탓에 ‘최저임금 위반’으로 단속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2013년 대법원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통상임금의 요건(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기업들은 바뀐 법리에 발맞춰 임금체계를 개편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화되는 것을 막는 방향으로 법원이 제시한 요건에 따라 ‘고정성’ 장치를 설치했다.
‘고정성’이란 쉽게 말하면 사전에 지급이 확정(고정)된 것을 뜻한다. 즉 근로 제공 당시 ‘별도 조건’을 갖출 필요 없이 지급이 확정됐다는 의미다. 상여금 지급에 ‘지급 시 재직 중’ 혹은 ‘3개월 이상 근속’ 등의 조건이 걸렸다면 고정성이 없어서 통상임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차 전현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11년 만에 통상임금의 요건 중 고정성 요건을 폐기하면서 큰 충격을 던졌다. ‘재직 조건’, ‘근속기간 조건’이 붙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바뀐 법리의 파급력은 연장근로·휴일특근 비중이 높은 제조업체, 야간근로 비중이 높은 2교대 사업장에서 더 크다. 예를 들어 월 기본급의 600%를 ‘재직 조건’이 걸려 있는 정기상여금으로 주는 사업장이 있다면, 바뀐 법리에 따라 한 달 기본급의 약 50%(600%/12개월)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통상임금이 1.5배로 뛰면서 수당도 그만큼 오른다. 만약 이 사업장의 통상시급이 2만 원이라면 이전까진 휴일 8시간 특근수당이 24만 원(8시간×2만 원×휴일할증 1.5배)이었지만 앞으로는 36만원이 된다. 사무직도 고정연장근로수당[고정OT(Over Time)수당] 등은 인상 대상이다. 2교대 사업장에선 인건비가 40% 이상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기업들에선 상여금을 임금이 아닌 복지포인트로 바꾸거나 고정연장근로수당 시간 수를 줄이는 현상이 포착된다. 하지만 임금체계를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집단적 동의절차를 거쳐야 해 후속 법적 시비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한편 주요 사업장에서는 바뀐 법리가 우리 회사 임금체계에 적용되는지, 언제부터 적용해야 할지 등이 임단협에서 뜨거운 이슈가 될 전망이다. 대법원이 사회적 혼란을 막는다며 바뀐 법리의 ‘소급효’를 제한했지만, 2013년 통상임금 판결에서 제시한 ‘신의성실의 원칙(경영상 어려움, 기존 노사합의 여부 등을 고려해 추가 지급할 통상임금 범위를 판단)’ 법리와 마찬가지로 그 법적 효력과 해석의 범위를 두고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
여러모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임금체계 개편의 트리거가 될 전망이다. 같은 임금을 받아도 인건비 항목이나 지급 방식에 따라 통상임금이 달라지는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법원 판결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혼란을 막으려면 통상임금의 개념을 구체화, 입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연장근로를 당연시하는 것을 전제로 노사가 연장근로 대가(통상임금)만을 두고 법정에서 다투게 만드는 현행 근로시간 체계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