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의 대가는 한 달에 한 번씩 정산이 될까? 누가 이런 원칙을 만들었을까? 따져보니 이상하다. 아르바이트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일자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으로 급여를 주고 있다. 너무 당연한 문화이기 때문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달이 아닌 주를 기준으로 급여를 산정한다. 대부분 2주를 기준으로 급여를 받고 실업수당 역시 주급으로 받는다. 우리는 왜 월급을 받게 됐을까?
“조선 3사를 비롯한 대기업체에서 생산직 근로자들의 월급제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 대우조선 노사는 지난 21일 생산직 근로자들의 임금형태를 종전 시급제에서 월급제로 전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올해 노사협상을 타결했다.”
1995년 7월 23일자 『경향신문』 기사다. ‘생산직 근로자 월급제 확산’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대기업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급여를 월급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대우조선에 앞서 삼성중공업이 월급제를 도입했고 현대중공업, 호남정유, LG정보통신 등이 월급제도를 시작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기사 말미를 보면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5년 이상 근속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분 월급제”가 적어도 블루칼라들에게는 일반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월급을 받는 계층은 주로 화이트칼라였고 블루칼라는 5년 정도는 일해야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선구적인 기업들이 있긴 했다. 1986년 전후로 선경그룹, 즉 지금의 SK그룹에서 전 사원 월급제를 최초로 도입했고 1989년부터는 포항제철, 오늘날의 포스코그룹에서 전 사원 월급제를 도입했다. 1992년 이후에는 성과급, 능력급, 연봉제, 단일호봉제 등 새로운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기업이 생기면서 급여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 특수선 사업부 내 식당건물 3층 옥상에서 이 회사 근로자 박삼훈 씨(41)가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 투신 자살을 기도해 대우 옥포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이 회사 노조는 기본급 14.9%(10만2,900원) 인상과 월급제 시행 등을 요구하며 회사 측과 20여 차례의 협상을 벌였으나 진전이 없자 이날 쟁의 발생 신고를 했다.”
1995년 6월 22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처럼 당시에는 월급제를 요구하며 노동자가 분신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월급제는 생산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였다. 당시 노동자들에게 월급제는 오늘날의 정규직과 같은 의미였다. 월급은 매달 지급받는 ‘고정된 급여’로, 사정에 따라 조퇴나 결근도 가능하고 초과 수당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회사에서 제공되는 각종 복지제도 또한 누릴 수 있다.
이처럼 노동계에서는 전 사원 월급제를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이에 대한 우려 또한 컸다. 근태 기강 해이, 생산성 저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세는 월급제였다. 1995년 삼성전자는 ‘한가족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월급제를 도입했는데 근로 의욕 고취, 생산성 지속 향상, 월 1회 토요 휴무 확립이 이유였다. 이를 통해 정신적 일체감과 삶의 질 향상이 이뤄진다는 건데 경영진 입장에서는 월급제 도입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월급제는 일제강점기 영향이 크다. 일제는 193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일급제’, 즉 일당을 주는 형식으로 급여를 지급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월급제가 보편화된 것이다. 노동의 대가인 급여를 주 단위로 받는 방식은 고려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