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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잘 죽기 위해 이제 사회적 상속을 생각해 볼 때”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2025년 05월호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식품회사 창업자, 국회의원, 지자체장을 거치며 바쁘게 살아온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는 정계에서 은퇴한 2020년, 70세의 나이로 삶을 존엄하고 가치있게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 문화를 확산하는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국회 입법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웰다잉문화운동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원 대표를 만나 존엄한 삶과 죽음 문제의 연장선에서 한 개인이 사회에 어떤 유산을 남길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웰다잉문화운동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올해가 우리나라 초고령사회 원년이다. 이제 65세 이상 노인이 총인구의 20%를 넘는다. 인구 변화의 충격을 잘 흡수해 사회가 활력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천만 노인 시대에 노인들이 주체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며 현재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적 상속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웰다잉의 양대 축은 생명과 재산에 관한 결정이다. 19대 국회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 입법 활동을 하면서 배운 게 연명의료뿐 아니라 재산 처분, 장기 기증, 장례 절차 등 자기 결정이 중요한 부분이 많다는 거였다. 그중에서도 생명에 대한 결정만큼 중요한 게 재산에 대한 결정이다. 그런데 장수 시대다 보니 유산을 물려받을 자녀도 그들의 자녀를 독립시켜 큰돈이 필요하지 않은 60~70대 은퇴자인 경우가 많다. 자녀들에게 얼마를 주느냐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게 된 거다. 이런 상황에서 미리 유언장을 써보면서 땀 흘려 모은 내 재산을 무조건 자녀에게 물려줄 것이 아니라 좀 더 뜻있게 쓸 수 있는 길을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상속은 부자여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사회적 상속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주로 유산 기부로 이뤄지는데, 이미 국내외에서 다양한 유산 기부운동이 있어왔다. 물려줄 돈이 많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내 성취의 일부가 우리 사회 덕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어차피 죽어서 가지고 가지 못하는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면 1~5% 정도는 좋은 일에 써볼 수 있지 않겠나. 피겨 선수 후원, 축구 꿈나무 육성, 과학 연구나 탐험 활동 지원처럼 젊어서 꿈꿨지만 먹고살기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사회적 상속을 확산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사회적 상속이란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고자 재산을 사회에 ‘상속’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최소한 출발선에서의 평등이 누구에게나 보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적인 팽창을 이뤘으니 이제 질적으로도 성장할 때이고, 이를 위해 사회적 상속이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자발적으로 유산의 10% 이상을 기부하면 상속세율을 낮춰주는 영국의 ‘레거시텐(legacy10)’ 제도처럼 인센티브를 주면서 자녀 상속을 당연시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나간다면 사회적 상속이 빠르게 확산할 거라고 본다.
 

 
유언장 쓰기 캠페인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유언장 쓰는 문화가 정착돼야 유산 기부가 활성화될 텐데,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건 재벌들이나 쓰는 거지, 나야 달랑 집 한 칸인데” 한다. 인생을 끝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꺼려진다는 반응도 많다. 그런데 적은 돈이라고 덜 소중한 게 아니고 유언장을 써두지 않으면 자녀들이 다투게 되니 권리일 뿐 아니라 책임이기도 하다. 다만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받으려면 ‘구체적 내용, 자필로 작성’ 등 갖춰야 할 요건이나 유류분 분쟁 없이 각 상속인에게 돌아갈 최소한의 몫 배분 등 법률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런 구체적인 사항을 물어볼 수 있는 무료상담센터를 변호사 17명의 자원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 완성된 유언장을 액자에 걸어놓을 일도 아니고, 마음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한번 정리해 보는 거다. 그리고 연말에 꺼내 봤을 때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쓰면 된다. 그러니까 유언장 써보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가족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상속문화도 바뀌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대표적인 변화가 1인 가구 증가다. 그래서 유언장 작성이 더더욱 중요해졌다. 혼자 사는 사람이 재산에 관해 결정해 두지 않고 세상을 떠나면 수십 년 전에 마지막으로 본 형제나 조카 등에게 상속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교류도 없는 형제, 자식보다 매일 나를 반겨주던 반려동물 걱정이 앞설 수 있다. 그런데 반려동물에 상속하는 것은 법적 효력이 없어 최근에는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조건으로 제3자에게 상속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최근 상속세법 개정이 이슈다. 상속세에 대한 생각은?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재산가액이 커져 상속세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하는 그런 문제 때문에 법을 개정하려는 걸로 안다. 사회 변화에 맞춰 세액의 적정 수준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상속세를 내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출발선에서의 평등을 뒷받침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합리적인 선에서 상속세가 유지되는 게 좋겠다.

여러 차례 정책세미나를 개최하며 웰다잉 관련 어젠다를 발굴하고 있는데 최근 가장 관심 있는 정책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연명의료결정법」의 합리적 개정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인공호흡장치는 달지 않는 것이 가능해도 인공영양공급은 안 할 수 없다. 모순이다. 자연스럽지도 않고. 법 제정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바꾸려고 한다. 또 유언장은 쓰는 일 못지않게 보관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냥 쓰라고 해도 안 쓰는 판국에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몇 백만 원 주고 공증받아 보관하라고 하면 하겠나. 일본도 우리처럼 유언장을 안 썼는데 빈집 상속 등 사회적 문제가 워낙 많아지자 한 5년 전부터 정부가 나서서 유언장을 보관해 준다. 우리도 빨리 이런 유언장 공적 보관 서비스를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웰다잉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저출산·고령화를 맞은 우리에게 아주 절실한 시대적 과제인데도, 그것이 홍보·교육될 기회가 많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의논하고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많이 만들고 싶다. 고령화로 필요한 노인 일자리 등 모든 복지·행정은 그것을 한 치라도 움직이려면 재정이 있어야 하지만, 웰다잉문화는 시민들이 생각할 계기와 자극만 주면 ‘무의미한 연명치료 안 받겠다’, ‘허례허식 없이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겠다’ 등 개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상속 다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가정당 수천만 원, 국가적으로 수조 원에 이르는 무의미한 말기 의료비가 절감될 수 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지를 국회나 행정부 차원에서 공감하고 장·단기적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면 좋겠다. 
 
최슬기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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