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은 이제 큰 비즈니스죠.” 2023년 11월 도쿄에서 만난 혼마 후미야 상속문제대책연구소 대표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상속시장’이나 ‘상속업계’ 같은 용어는 아직 한국에서 생소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를 본 혼마 대표는 명쾌한 설명으로 납득시켰다. “일단 상속할 때 메인은 부동산이니 자산 규모가 상당하죠? 움직이는 돈의 덩치가 크니 자연스레 이익이 발생하는 거죠.” 혼마 대표의 상속문제대책연구소는 변호사, 세무사 등이 모여 상속세 납부나 유산 분배 등 상속 관련 상담을 진행하는 곳이다. 일본에서는 비슷한 업체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부모 사후에 형제 간 유산 다툼 같은 일로 변호사를 찾는 일이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의 핵심은 ‘생전(生前)’이다. 재산을 보유한 사람이 상속인(배우자나 자녀)에게 나눠줄 유산의 비율이나 상속세 부담 방식을 사망 전에 정하려고 전문가를 찾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보편성이다. 혼마 대표는 “예전에는 유언장을 쓰는 건 부자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중산층 사이에서도 생전 재산 정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상속시장이 생겨난 이유”라고도 덧붙였다.
죽기 전에 재산을 정리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는 건 그만큼 상속으로 인한 잡음이 일본 사회를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먼저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노인이 노인에게 상속하는 노노상속(老老相續)이 증가했다. 2022년 기준 실제 유산을 받은 상속인의 52%가 60세 이상일 정도다. 부의 고령화로 경제 활력을 잃은 건 물론 세대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자산을 축적한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사망하기 시작한 것도 원인이다. 단카이 세대는 일본경제 호황기에 청년 시절을 보냈고 특히 부동산 보유 비율이 높다. 유산 규모가 커지니 상속 다툼도 늘어났다.
상속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업체들이 생겨났지만 모든 걸 시장에 맡길 수는 없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도 시민들의 원만한 상속을 돕는 제도를 고안해 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 공공 유언장 금고인 유언장 보관소를 만들었다. 자필 유언장은 가장 쉽고 저렴한 재산 정리 방식이지만, 작성 후 유언장이 훼손되거나 사후 발견 시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유언장을 보관해 주면서 이 단점을 보완하고자 했다. 법무국(등기소) 내부 금고에 보관되니 훼손, 도난으로부터 안전하고, 당사자가 직접 찾아가 유언장 보관을 신청해야 하기에 진위도 보장할 수 있게 됐다. 우리 돈으로 3만 원 정도면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삶을 돌아보면서 재산을 정리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지자체도 있다. 후나바시시는 재산 정리를 위한 ‘엔딩노트’를 만들어 시청에서 배포한다. 이 노트로 예금, 부동산 등 자산 목록을 작성하고 가계도를 그려 법정 상속인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사후에 재산을 어떻게 나눠줄지도 구상해 볼 수 있다.
한편 노노상속을 돌파하기 위해 2022년 기시다 후미오 정권은 ‘부의 회춘’ 정책을 내놨다. 손자녀 교육비에 1,500만 엔, 결혼·육아비는 1천만 엔까지 증여세를 매기지 않아 부를 젊은 세대로 이전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다.
상속재산 중 부동산의 비중이 큰 것은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이다. 일본에서 부동산이 많은 단카이 세대가 세상을 떠나며 상속 문제가 생긴 것처럼 한국 역시 서울 집값이 폭등해 상속 비율이나 세금으로 상속인끼리 갈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노상속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한국도 대부분의 시민이 상속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바람직한 상속을 위한 제도를 고민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