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대 대선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정치적 쟁점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임금삭감 없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주4일제를, 국민의힘은 법정 근로시간 축소 없는 주4.5일제를 제시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2,400만 임금노동자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다. 일 중독 피로사회인 한국에서 시간의 향기를 되살리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매우 바람직하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주요 내용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법정 주당 근로시간 내에서 일노동시간을 8시간 이상으로 늘리는 방식은 임금감소를 동반하지는 않지만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 또한 현재 탄력근무제로도 가능하며 별로 새롭지도 않다.
두 번째로, 임금삭감 없이 법정 주당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은 정부의 권한 범위 밖에 있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은 법제도 개정으로 가능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지불은 정부 권한이 아니라 사용자 또는 노사협의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세 번째로,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는 모든 노동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전 경험에 따르면 대기업, 공무원 및 공공기관 등에서는 임금이 보전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임금보전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저임금노동자는 초과근로를 통해 임금감소분을 상쇄하려고 할 것이고 실근로시간의 단축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네 번째로,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의 부담 주체가 논의에서 빠져 있다. 근로시간과 임금은 상호 연동돼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감소는 저임금노동자의 반발을 가져올 것이고, 사용자는 노동력을 이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려 할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비용을 일부라도 국가가 지원한다면, 저임금노동자의 세금으로 고임금노동자를 지원하는 것이 된다.
근로시간 단축은 단축의 정당성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주40시간 및 주52시간 상한제의 도입 배경에는 과로사와 장시간 근로체제의 해소라는 정당성과 사회적 합의가 존재했다. 이후 2023년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줄어들었다. OECD 평균은 연간 1,742시간이다.
OECD 국가의 법정 근로시간은 우리나라와 같이 대부분 주당 40시간이다. 근로시간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초과근로 관행에 있다. 주40시간 초과근로 노동자 비율이 우리나라는 26.3%인 데 비해 근로시간 선진국은 10~17%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체제는 법정 근로시간이 아니라 실근로시간 단축으로 풀어야 한다.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면 초과근로를 통해 임금손실을 만회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특히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정책적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시간자율성의 관점에서 초과근로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사가 산업·업종 단위의 사회적 교섭을 통해 근로시간에 대한 적정 기준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산업별·업종별 사회적 교섭이 이뤄지기 위한 법제도 개선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