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산업사회가 시작되고 시계가 발명되면서 ‘산업적 시간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시계가 없었다면 노동의 표준화와 규율화는 상당히 더디게 이뤄졌거나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동시에 산업적 시간은 출퇴근시간과 휴식시간이라는 사회 공통의 리듬을 형성했다. 적어도 ‘노동 시간’과 ‘사회적 시간’을 둘러싼 의미, 획일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의 의미, 표준적 시간과 사회적 시간의 의미는 서로가 갈등하며 함께 구성돼 왔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돼 온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다”라는 말은 표준적이고 획일적으로 종속된 시간 대신 사회적으로 공통된 시간 구성을 꿈꾸며 싸워온 역사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이후 노동시간의 의미는 급격하게 변했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과 동시에 연장근로와 같은 불규칙한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는 한편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화된 법정 노동시간제도의 약화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노동시간의 길이만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장시간 노동체제’가 사회 문제로 공론화되면서 법정 노동시간 단축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법정 노동시간은 1989년 주44시간, 2003년 주40시간으로 전체적인 단축을 이뤄냈다. 그러나 주 최대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법정 노동시간은 주40시간이었지만 주 최대 68시간까지 연장근무가 가능하도록 열어놔 장시간 노동체제가 근절되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불평등이 확산한 것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주52시간 상한제를 못 박았지만 이때 탄력근로제 등 노동시간 유연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권장됐으며, ‘특별연장근로’와 같은 노동시간의 예외적 허용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상례화되면서 또다시 ‘장시간-불규칙 노동’이 확산됐다.
오늘날 우리는 기업의 규모에 따라,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신분’에 따라 각자의 노동시간 체제로 구별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즉 ‘법정 노동시간’과 ‘실노동시간’의 간극이 노동의 지위와 계층적 구분에 따라 심화돼 사회적·공통적인 삶의 구성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정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시간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주4.5일제 시범적 실시를, 국민의힘은 ‘노동시간 단축 없는’ 주4.5일제를 통한 노동유연화의 증대를, 민주노동당은 ‘진짜 주4일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시간불평등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정치가 재구성돼야 한다는 것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선거 임시공휴일도 없이 일하는 콜센터 노동, 플랫폼 노동,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새로운 시간체제를 꿈꿀 시간이 없으며, 투표할 시간조차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불안정 노동’과 ‘불규칙 노동시간’이 교차되는 지점에 서 있는 노동자 집단을 중심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시간불평등은 ‘제도적 틈’으로 확산된다. 이 ‘틈’을 메우고 제도의 보편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단축이 제도적으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보편적 적용은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