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송정동 주택가 골목의 4층짜리 다세대주택 코끼리빌라는 버려진 빈 건물을 새롭게 활용한 ‘1유로 프로젝트’ 1호점이다. 곰팡내 나던 빈집을 “3년만 맡겨보라”는 제안에 건물주는 “왜 안 되겠어요?”라며 호응했다. 민간 건축가인 필자가 건물주를 설득해 빌려 쓴 이 공간이 2023년 2월 문을 열며 한국형 1유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송정동에 이어 올 3월에는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1유로 프로젝트 2호점을 열었다. 1유로 프로젝트팀은 불황으로 임대업이 어려워 고민이 깊던 한 건물주와 공감대를 이뤄 오래된 목욕탕, 주택, 소규모 상가 건물이 밀집해 수년간 공실이 넘치던 이 지역의 빈 건물 3채를 재생했다.
1유로 프로젝트는 인구 감소로 방치된 건물을 1유로에 임대해 새 숨결을 불어넣는 유럽의 도시 재생 아이디어를 한국의 현실에 맞게 구현한 것이다. 건물주는 놀리던 건물을 제공하고, 입주 기업은 비용을 보태 이를 리모델링해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입주 기업은 ‘좋은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작은 기업들로 엄선했다. 1호점에는 제로웨이스트 생활용품점, 친환경 패션점, 수제 막걸리 양조장, 1인도 이용 가능한 소규모 목욕탕, 가죽공방 등 18개 업체가 입주했다. 이들은 보증금 없이 월세 0원(3년간 1유로만 납부)의 혜택을 누리고, 인테리어 및 공용공간 리모델링 비용과 관리비 등은 공동 부담한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든 공간이다 보니 서로 시너지를 내는 협업도 활발하다. 생활잡화 편집숍에서 다른 입주 브랜드의 꿀, 디저트를 판매하고, 온라인 화장품 브랜드가 가죽공방과 함께 립밤 케이스를 출시했다. 프로젝트 공간은 젊은 창업자들의 공동 성장 인큐베이터로 변모하고 있으며, 각 브랜드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통일감 있는 감성이 공간에 더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공간 운영 방식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1호점은 모든 입주 업체가 주 1회 이상 좋은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따라서 요가·명상 클래스, 플로깅(조깅하면서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운동), 공예 교실, 성악 레슨 등 다채로운 주간 이벤트를 운영하고, 매주 일요일에는 옥상정원에서 벼룩시장을 연다. 2호점도 1층과 마당에서 팝업 스토어, 워크숍 등 수시로 행사를 열어 주말마다 젊은 방문객과 인근 주민이 어울리는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1유로 프로젝트의 저변에는 ‘도시의 가장 좋은 인테리어는 사람’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다. 공간의 외형을 바꾸는 것보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도시 정체성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소규모 자본의 민간이 도시 재생 부동산 실험을 주도했고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냈다. 청년 창업자에게는 초기 자금 부담 없이 도전할 공간을, 지역에는 새로운 활력과 공동체 프로그램을, 건물주에게는 낙후 자산의 가치 상승을 안겨준 윈윈 모델이다. 도시 재생에서 흔히 겪는 콘텐츠 부족 문제를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로 해결하고 젠트리피케이션 없이 상권을 살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유로 프로젝트 사례는 앞으로 정부와 시장의 접점을 고민하게 한다. 오래된 동네를 살리는 해답이 반드시 재개발일 필요는 없다. 중앙정부 차원의 거대한 예산 투입이나 법 개정 없이 로컬 기반의 작은 실험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한 1유로 프로젝트 같은 상생 실험이 더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가 지속 가능한 도시 재생의 새로운 장을 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