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올해도 어김없이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 폭염으로 식량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여름 제철 과일인 수박은 8월 1일 기준 평균 소매 가격이 3만3,337원으로 오르며 전년 대비 17.6%, 평년가 대비 25%나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무더위뿐 아니라 극한 호우까지 찾아오면서 가축들의 집단 폐사가 발생했고, 이는 달걀과 우유 가격의 인상을 넘어 공급 부족 문제로도 번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후위기는 ‘먼 나라의 일’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적도 부근에 있는 투발루 같은 나라들의 국토가 실제로 사라지는 모습, 해외에서 목격되는 온갖 극한 기상현상 등을 ‘해외토픽’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일부는 ‘그나마 한국은 좀 나은 편’이라며 위안 삼고 즉각적인 온실가스 감축은 회피 또는 외면하기도 한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1912년부터 2024년까지 전 지구 연평균 기온이 1.5℃ 상승하는 사이, 우리나라는 3.6℃나 올랐다. 기온의 상승 속도뿐 아니라 해수면의 상승 속도 또한 한반도는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한국이 기후위기의 ‘변두리’가 아닌 ‘한복판’에 있다는 방증이다.
여름철 맑은 날 우리나라에 비추는 햇살의 밝기는 100~120klux 안팎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표적인 여름 작물인 수박(70~80klux)은 물론 강한 햇볕에 노랗게 익어갈 벼(50~60klux)의 광포화점을 한참 뛰어넘는다. 광포화점은 식물의 엽록체가 빛의 세기에 따라 이동하며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광정위운동을 통해 최대한 광합성할 수 있는 조도의 한계점을 의미하는데, 광포화점을 넘기는 빛에선 엽록체 스스로 손상을 막기 위해 빛에 노출되는 면적을 줄이게 된다. 여름 작물이라 해서 마냥 ‘뜨거운 기온’을 반기는 것도 아니다. 보리나 배는 20℃ 안팎, 수박은 23~28℃, 벼는 30~32℃가 생육에 최적인 온도다. 그간 우리와 함께해 오던 작물들이 견디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은 ‘너무 남아서’ 논란인 쌀은 대표적인 ‘취약 작물’이다. 국립식량과학원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벼에서 쌀알이 열리는 비율은 92.2%이고, 그렇게 열린 쌀알 가운데 상등품을 뜻하는 정상립의 비율은 73.1%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당장 2050년대에는 쌀알이 열리는 벼의 비율이 51%로 줄어들고, 그렇게 열린 쌀알 중 정상립의 비율은 46.5%로 급감할 전망이다. 그 결과 2060년대 단위 면적당 쌀 생산량은 10a(a=100m2)당 368kg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970년대(370kg/10a)보다도 못한 양이다. 지금 ‘남는 쌀’을 걱정할 때가 아닌 셈이다.
작물만 문제가 아니다. 작물을 심거나 수확하는 일은 시간당 200~350kcal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중등작업으로 분류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종합보고서는 기후변화 대응 정도에 따라 달라질 미래 사회·경제 모습을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한다. 이 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 시나리오 중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고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SSP5-8.5에 따르면, 연간 작업 가능 일수는 지금으로부터 25년 후인 2050년엔 278.6일, 2075년엔 230.7일, 2100년엔 211.1일로 줄어든다.
2050년 7~8월엔 매시간 ‘15분 작업-45분 휴식’을 해야 하며 월별 작업 가능 일수도 각각 하루와 사흘에 불과하다. 사실상 여름철 노동이 불가능한 셈이다. 2075년엔 7~8월 작업 가능일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6월(3.5일)과 9월(1.6일)에도 매시간 75%를 쉬어야지만 작업이 가능하다. 2100년엔 6~9월 넉 달간 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5월과 10월에도 쉼 없이 작업이 가능한 날은 각각 2.1일과 7.5일에 그칠 전망이다. 작물만 살기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심고 가꾸고 수확해야 하는 인간의 생존까지도 위협받는다.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을 게을리하고 식량과 관련한 농업, 수산업, 식품업 등 업계 전반의 온실가스 감축에도 집중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먹거리를 해외 수입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매년 반복되는 히트플레이션을 그저 ‘여름철 단골 뉴스’로만 접하고 이내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고,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