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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대탈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2025년 12월호
비록 세상 경험이 부족한 청년층이라고 해도, 계산적 합리성에 근거한다면 캄보디아행은 납득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확실한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여러 위험이 도사릴 수 있다는 정보도 접해 봤을 터인데, 그들은 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산업사회의 가장 중추적 제도인 노동시장이 근본적 기능부전에 빠져 있다는 사실과 청년들에게 희망과 의욕이 아니라 체념과 절망이 자라고 있는 현실을 읽을 수 있다.

경제 사상가 칼 폴라니는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노동시장은 불과 몇백 년 전인 산업혁명과 함께 나타난 제도라고 말한 바 있다. 품삯을 주고 일꾼을 구하는 관행이야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었지만, 임금 수준과 실업률이 순수하게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고 작업 내용과 조건이 계약 당사자들의 재량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근대적인 ‘자유’ 노동시장은 1834년 영국에서 옛 구빈법이 철폐되면서 비로소 출현했던 것이다. 폴라니는 노동시장이 내포하고 있는 불합리성을 ‘인간은 상품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구절로 요약했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을 얻기를 원하며, 노동 과정에서 삶의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임금 수준과 작업 내용을 결정하는 여러 몰인격적인 힘은 그러한 노동의 ‘인간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이란 임금 수준과 필수적 욕구의 크기가 조응해야 성립한다. 그런데 임금 수준과 고용률은 노동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며, 그 배후에는 기술적 조건이 버티고 있다. 또한 필수적 욕구의 크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다. 지난 십몇 년간 소득 수준은 정체를 면치 못하거나 오히려 더 악화돼 왔다. 반면 필수적 욕구는 광고뿐만 아니라 SNS의 확산과 맞물린 소비사회의 팽창으로 갈수록 더 강화됐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 등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의 안녕도 위협한다. 이러한 필요 욕구 및 생활 수준의 상승은 계절적 순환이나 일시적 상황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작동에 따른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추세다. 그리고 문화적인 유연화 혹은 액체화(지그문트 바우만)에도 불구하고 작업장에서의 노동 강도와 기율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갈수록 강화돼 젊은 세대일수록 버겁게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특히 젊은 세대의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대탈출’이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이미 몇 년 전 코로나 팬데믹 당시 거대한 사직(great resignation) 사태로 대탈출이 나타났고, 우리나라에서도 4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구직활동도 교육훈련도 하지 않고 ‘쉬었음’ 상태에 있다고 답했다. 속칭 ‘인서울’ 대학을 졸업한 상층부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갈수록 전망도 없고 사람만 지치게 하는 암울한 선택지가 돼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피로(great fatigue) 앞에서 200년 전 ‘자유’ 노동시장이 처음 나타나던 때에 사람들을 노동하게 만들었던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과 ‘더 큰 이익에 대한 탐욕’이라는 동기부여는 점점 힘을 잃어간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노동시장으로부터의 탈출을 갈망한다. 주식, 코인 그리고 캄보디아. 리스크 투성이임이 분명함에도 과감히 비행기에 올라타 뛰어든 청년들의 모습은 이제 노동시장이라는 시장경제의 큰 기둥 하나가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을 소외시키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증후로 보인다. 폴라니의 말대로 인간을 상품으로 다루는 노동시장의 ‘상품 허구’가 균열을 보이는 증후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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