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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더 깊이 파는 것보단 이미 축적된 도시 자원을 정밀하게 되살려야
제진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2026년 03월호

AI와 반도체, 에너지산업이 이끄는 기술 대전환 시대 속에서 최근 전 세계는 자원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희토류와 리튬 등 배터리 핵심광물은 더 이상 단순한 산업 원료가 아니라 기술패권과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희토류·흑연 수출통제, 그린란드 내 희토류 개발을 둘러싼 미국과 EU의 갈등, 베네수엘라 자원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은 자원이 국가 간 힘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른바 ‘글로벌 자원전쟁’의 본질은 광물 확보 경쟁이 아니다. 핵심은 누가 자원을 ‘처리’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정제·분리·가공 기술을 누가 지배하는가에 있다. 그린란드는 막대한 희토류가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지만 저품위 복합광과 방사성 원소를 함께 처리할 정제 기술이 부족해 실질적인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또한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도 정제·가공 기술의 부족으로 자원이 외교적 리스크가 되는 등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두 사례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기술이 부재하면 자원주권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교훈을 던진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은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에 특히 가혹해 보인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도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는 원광(原鑛)이 부족하지만 화학공정·분리·정제 기술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축적해 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시광산(Urban mining), 즉 재활용·재자원화 기술이 국가 자원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도시광산은 폐전기·전자제품, 산업 스크랩(폐기물), 사용 후 배터리 등 국내에 축적돼 온 자원으로부터 플라스틱뿐 아니라 니켈, 코발트, 리튬, 희토류와 같은 핵심광물을 회수하는 기술체계를 의미한다. 가령 폐배터리의 재활용 과정을 보면 배터리를 파쇄·분쇄한 후 이때 생성된 중간 가공품인 블랙매스에서 침출 → 침전 → 용매 추출 → 결정화 공정을 통해 리튬 등 고순도 금속을 분리한다.

도시광산 기술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급망 리스크를 완충하는 실질적 장치이자 자원주권을 기술적으로 대체하는 수단이다. 원광 확보가 어려운 국가일수록 재활용 기술을 통해 실질적 자급 능력을 높일 수 있다. 둘째, AI 및 반도체산업의 숨은 기반 기술이다. GPU를 비롯한 전기차의 배터리·모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모두 핵심광물 없이는 생산할 수 없다. AI 혁명 역시 데이터와 알고리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광물 집약적’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가자원안보 컨트롤타워인 자원안보협의회가 출범하면서 제시한 ‘핵심자원의 안정적 확보’ 역시 기술 혁신을 전제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이는 해외 광산 투자와 외교 협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원광 확보에만 의존하는 전략은 그린란드와 베네수엘라 사례가 보여주듯 언제나 외교 변수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반면 재활용·재자원화 기술은 국내 산업 역량을 기반으로 한, 좀 더 통제 가능하고 지속적인 자원안보 수단이다.

자원이 무기화되는 시대 생존 조건은 분명해지고 있다. 자원안보는 더 이상 환경정책의 부속물이 아니라 산업과 기술, 안보를 관통하는 핵심 국가전략이 됐다. 우리나라가 선택해야 할 길은 땅을 더 깊이 파는 것이 아닌 이미 축적된 도시의 자원을 정밀하게 되살리는 것이다. 자원 빈국인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 손에 남는 기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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