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공공은 민간보다 비효율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같은 서비스를 공공과 민간이 모두 제공할 수 있다면 민간에게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특히 금융은 민간 영역 중에서도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그 때문에 통화를 발행하는 한국은행 같은 공적 기능 수행기관을 제외하면, 통상의 금융업무는 당연히 민간이 담당한다. 돈 굴려서 이문 내는 것으로 경쟁한다면, 공공은 민간의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허무하게 깨지는 금융 분야가 있다. 바로 연금이다. 우리의 연금은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의 삼총사로 이뤄져 있다. 직장인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에 가입한다.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이 관장하고 퇴직연금은 민간 금융기관이 담당한다. 국민연금은 운용수익과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고 퇴직연금액은 원금과 운용수익에 연동돼 있다. 한쪽은 공공이 운용하며, 연금액은 운용수익과 상관없다. 다른 쪽은 민간이 운용하며, 운용수익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진다. 어느 쪽이 운용수익을 더 높이기 위해 애쓸까? 그 결과 어느 쪽의 운용수익이 더 클까? 누구나 퇴직연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국민연금 운용수익이 더 크다. 그것도 압도적이다.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은 퇴직연금 수익률의 세 배 이상이다! 어찌 이런 상식을 붕괴하는 일이 생겼을까?
이는 누가 기금을 운용하는가의 차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전문가 집단이 보험료 적립기금을 운용하는 반면 퇴직연금은 가입자(개인 또는 회사)가 스스로 운용한다. 가입자 중에는 전문적인 운용 실력을 갖추고 고수익 상품을 선별해 운용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극소수다. 대부분은 전문성이 약한 탓에 정기예금과 흡사한 원리금 보장상품에 가입하거나 금융기관이 권하는 상품에 가입한다. 그 결과 국민연금 평균 수익률은 7%에 달하는 데 비해 퇴직연금은 2% 남짓이다.
퇴직연금도 의무 가입이다. 국민연금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왜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은 가입자에게 운용 책임을 떠넘길까? 다른 나라 퇴직연금은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처럼 기금을 만들고 전문가가 운용한다. 기금만 허용하는 나라도 있고, 기금과 가입자 운용 중 선택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
기금으로 운용하는 해외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국민연금과 유사하거나 그보다 높다. 만약 퇴직연금 수익률이 국민연금 수준인 7% 정도라면, 현행 2%일 때보다 연금수령액은 급격히 높아진다. 입사 때 월 급여가 300만 원, 연간 급여상승률이 3%, 물가상승률(2%)에 30년 재직하다 퇴직해 25년간 퇴직연금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수익률이 7%면 현재 가치로 월 240만 원을 받는다. 물론 물가상승률만큼 급여도 상승한다. 이에 비해 수익률이 2%면 월 수령액은 6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소득 보장을 분담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액수가 초라한 탓에 누구도 이를 노후 대비 수단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냥 일시금으로 찾아서 소비하고 만다. 퇴직‘연금’이라는 명칭이 무색하다.
대체 우리 퇴직연금은 왜 이 모양이냐고 푸념하자 동료 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은 퇴직연금 대상자가 아니거든. 그러니 신경 써서 잘 만들 이유가 없지.” 진짜로 그럴 리야 만무하다. 이제 와서 누구의 잘잘못인지 가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잘못된 설계 탓에 그동안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노후소득에 막심한 손해를 봤음은 인정하고 이제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최근 정부는 기금 도입안을 만들고 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다만 실제 운용수익은 예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무늬만 기금형을 도입할까 봐 걱정되기는 한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목표수익률을 해외 유수의 퇴직연금에 맞춰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국민연금공단에 맡기는 게 낫다. 제발 이번만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개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