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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업장에 퇴직연금 의무화하고 기금형 3가지 유형 논의 중
남성욱 고용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장 2026년 05월호
“사회보험의 목적은 결핍(want)을 해소하는 것이다.”
현대 복지국가의 기초를 세운 윌리엄 베버리지가 한 보고서에서 말한 내용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노동자들에게 가장 절박한 결핍은 단연 준비되지 않은 노후다. 퇴직연금 적립금 500조 원 시대를 앞둔 지금, 우리는 퇴직연금을 단순한 금융상품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의 노후를 지탱하는 실질적 사회보장 체계로 볼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지난 2월 6일 발표된 노사정 공동선언은 이 질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응답이다. 퇴직연금을 다층적 노후소득 보장 체계의 핵심 기둥으로 바로 세우겠다는 대전환의 합의이며, 노동자의 ‘수급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로마의 법학자 울피아누스는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려는 확고한 의지”라고 정의했다. 노동자가 평생 흘린 땀의 대가인 퇴직급여가 기업의 도산 등으로 사라진다면, 그것은 사회 정의가 무너진 것이다.

공동선언에 명시된 ‘사외적립 의무화’는 이 당연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현재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는 사업장은 기업 내부 장부상으로만 적립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 도산 시 체불 위험이 크다. 실제 퇴직급여 체불은 전체 임금 체불의 약 40%에 달하며, 주로 영세 사업장에 집중돼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전 사업장에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 금융시장의 규모를 키우기 위함이 아니다. 노동자가 흘린 땀의 대가를 국가와 사회가 끝까지 책임지고 전달하겠다는 ‘수급권 보호’ 실현을 위함이다. 다만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통해 영세 사업장의 여건을 세밀히 살피고, 정부 지원책을 병행해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할 것이다.

공동선언에 명시된 또 다른 핵심 과제는 ‘기금형 퇴직연금’의 도입이다. 이는 전문가에게 기금 운용을 맡겨 수익률을 높이고, 노사가 함께 기금운영위원회(수탁법인 이사회)에 참여해 민주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제도다. 노동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의 확립이다. 기금은 오직 가입자의 이익만을 위해 운용돼야 하며, 이해상충 방지와 투명한 지배구조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기본 전제다. 기금형 제도는 확정기여형(DC)에 도입돼 기존 계약형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시장 전체의 투명성을 높이는 촉매제가 될 것이며, 투명한 지배구조는 퇴직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의 3가지 유형이 논의될 예정이다. 현재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한 실무작업반에서 구체적 설계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 계약형 제도의 적립 부족 문제와 낮은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약형 퇴직연금을 고도화할 방침이다.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및 적립금운용계획서(Investment Policy Statement)의 내실화, 퇴직연금 사업자 평가제도 개편, 합리적 수수료 부과 기준 정립을 추진해 금융기관이 수탁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번 노사정 공동선언은 상호 존중과 양보를 통해 ‘노동자의 노후소득 보장 강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울림이 크다. 정부는 이번 선언이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입법화와 현장 안착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수급권이 확실히 보호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국가가 줄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는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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