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퇴직연금 기금화’ 논란이 뜨거웠다. 정부가 강제적인 기금화로 개인의 재산권과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기에 퇴직연금 의무화나 퇴직연금공단 신설 논의까지 섞이면서 ‘기금화=국유화’라는 오해가 더해졌다. 지난 2월 퇴직연금 노사정 합의를 거쳐 7월 법 개정을 앞둔 지금, 막연한 불신과 오해의 시선부터 걷어내야 본질적인 쟁점과 마주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누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구분된다. 계약형은 개별 기업이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와 직접 계약해 운용과 자산관리를 맡기는 방식이다. 대개 확정기여형(DC)은 가입자가, 확정급여형(DB)은 인사 관리자가 금융기관이 제시하는 상품 리스트에서 선택한다.
기금형은 수탁법인을 설립해 다수 사업장의 적립금을 하나로 모아 운용하는데,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은행·증권·보험 등 민간 금융회사가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금융기관 개방형 기금’, 복수의 특정 사용자(산업·업종 등)가 연합해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연합형 기금’, 그리고 별도 수탁법인 없이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 등과 같은 ‘공공기관 개방형 기금’ 가운데 운용 주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금형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까? 세 가지 기금형 모두 신탁기금 형태로 운영되며 적립금의 법적 소유권은 여전히 가입자에게 귀속된다. 기금형은 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할 뿐 국가나 수탁법인이 자산을 소유하거나 임의로 처분할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다. 즉 기금화는 자산의 귀속이 아닌, 운용 방식의 변화다. 다만 운용 주체와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가입자의 이익과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중요한 쟁점으로 남는다.
유사하게 기금형 퇴직연금이 경기 대응이나 산업정책, 심지어 주가 방어 등 ‘정부 쌈짓돈’처럼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퇴직연금 국유화 논란과 맞닿아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적 구조상 정부가 투자 대상과 규모, 시점을 직접 결정하거나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다. 공공기관 개방형 기금인 근로복지공단의 푸른씨앗 역시 전액 외부 운용사를 통해 운용하고 있으며, 국민연금공단이 퇴직연금 사업자로 참여한다고 해도 국민연금과 다른 별도 계정으로, 독립적인 이사회에서 운영한다.
문제는 수탁법인에서 발생할 수 있다. 적립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수탁법인이 가입자 이익과 달리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자사·계열사 상품 위주로 운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금형 도입의 핵심 쟁점은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체계, 수탁자 책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선택권 침해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노사정 합의에 따르면, 기존 계약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병행되는 구조다. 현행처럼 계약형을 유지할 수도 새로 기금형을 도입할 수도 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계약형과 기금형을 동시에 도입할 수도 있다. 한편 기금형 퇴직연금은 국민연금처럼 아예 중도인출이 불가능하고 일시금 수령도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다. 하지만 현행 제도와 마찬가지로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중도인출이 가능하고, 수급 방식 역시 연금 또는 일시금 중 선택할 수 있다. 기금형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기적인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취지를 강화하기 위해 연금 수령을 유도하는 정책 옵션들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의 재산권과 선택권 침해, 나아가 국유화라는 논란은 퇴직연금 기금화의 방향과 설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롯된 오해에 가깝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면에는 열심히 일해 적립한 노후보장 제도인 만큼 가입자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바람이 자리하고 있다.
기금화 자체가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쟁점은 가입자의 권리, 책임 구조, 민주적·전문적 운용과 독립성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담보할 것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