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섬, 이스터. 서울의 4분의 1정도 되는 규모로 칠레 본토에서 서쪽으로 3,700km 떨어져 있는 태평양의 작은 섬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이 유명한 섬엔 왜 원주민이 살지 않는 것일까?
1722년 이 섬에 처음 상륙한 독일 탐험가들의 기록은 그 당시 식인습성을 지닌 원주민들이 약 5천여명 정도 생활하고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최대 무게가 100톤에 달하고 그 높이가 10미터를 넘는 규모의 모아이를 해안가에 건립할 만큼 똑똑했던 원주민들은 대체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이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그 가운데 가장 신뢰할 만한 학설 중 하나는 생물다양성으로 풀리는 생태적 분석이다.
이 섬의 생태적 역사를 고생물학적 분석을 통해 살펴보면 최초 정착인은 폴리네시아인들로 그 시기는 서기 400년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섬에는 큰키나무(칠레에 분포하는 야자나무와 흡사한 나무로 추정)들이 번성했음이 화산분화구 늪지에서 발견한 꽃가루의 분석결과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꽃가루는 1400년경에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즉 섬에서 완전히 멸종된 것이다. 또한 섬의 곳곳에서는 돌고래와 조류의 뼈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들의 발견연대가 큰키나무와 일치한다. 즉 야자나무가 사라지면서 돌고래 뼈도 더 이상 출현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부터 원주민은 절멸의 과정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결과는 추론한다. 연구자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최초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인 고구마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숲을 제거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큰키나무가 지속적으로 벌채됐다. 이 나무들은 돌고래 사냥을 위한 배를 만드는 데 사용됐거나 모아이를 해안가로 운반하고 이를 건립하는 데 이용됐다.
같은 시기 숲속의 조류들도 주요한 먹이자원으로 활용됐고 이들의 알도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간에 의한 지속적인 벌채와 번성한 쥐들에 의한 큰키나무의 씨앗 훼손은 이들 군락의 유지에 요구되는 최소 한계점을 어느 순간 넘어서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큰키나무의 절멸은 원주민으로 하여금 돌고래 사냥과 모아이 건립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식량 문제와 함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돌고래 사냥이 불가능해지자 조류에 대한 식량의존해외사례도가 증가했고 이는 조류의 감소로 연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단백질 공급원의 감소로 인구 증가는 둔화되고 원주민의 수도 감소하게 된 것이다. 18세기 독일 탐험가가 도착했을 당시 이들이 식인습성에 의존해 살아온 것도 이 같은 과정에서 부족 간의 전쟁을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이스터 섬에 생육했던 큰키나무는 현재 지구상에서 멸종했으며 섬에 살았던 조류 25종 가운데 1종은 멸종, 최소 12종은 섬에서 절멸했다. 생물다양성 훼손의 궁극적인 영향은 원주민의 절멸로 귀결됐다.
이스터 섬의 비극이라고도 불리는 이 학설은 우리에게 생물다양성이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돌고래 사냥과 모아이 운송과 건립에 사용할 수 있는 큰키나무가 풍부하게 원주민과 공존했던 시기는 아마도 이스터 섬의 부흥기였을 것이다. 만약 그때 알맞은 규모를 지향하고 큰키나무 군락을 보존해 생물다양성을 유지했다면 이스터 섬은 자생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생물다양성이란 우리 삶의 질 문제를 넘어서 생존과 직결된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