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UR 농업협상 이행 첫 해인 1995년에 우리나라와 같이 쌀을 관세화 예외로 취급해 39만7천톤의 MMA(Minimum Market Access; 최소시장접근, 의무수입물량) 쌀을 수입했다. 그러나 유예기간을 2년이나 남겨둔 1999년 4월 1일 전격적으로 쌀을 관세화했다.
일본이 2000년까지 확보한 유예기간을 다 사용하지 않고 도중에 쌀을 관세화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누적된 쌀 재고 부담 때문이었다. 일본은 1994년부터 4년 연속 풍작으로 쌀 재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관세화 유예로 인한 MMA 쌀 수입이 누증돼 1998년 10월엔 쌀 재고량이 350만톤을 넘어서 적정재고량(150만톤)의 두 배를 초과했다. 이러한 공급과잉으로 일본 국내 쌀 가격이 1994년 이후 대폭 하락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일본은 조기 관세화를 통해 MMA 쌀 수입량을 줄이는 한편 높은 관세상당치를 관철시킴으로써 MMA를 초과해 외국 쌀이 수입될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먼저 주정용 쌀 수입실적에 기초해 kg당 402엔(당시 국제가격으로 약 1,300%)의 종량세를 설정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호주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EC 등이 일본의 관세상당치 계산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일본의 끈질긴 설득으로 2001년 12월 일본의 관세화조치는 WTO에 의해 공식 확정됐다. 일본의 MMA 쌀 수입량의 약 50%를 점유하고 있었던 미국이 일본의 관세상당치 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양국 간 사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일본이 미국의 양해를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관세화를 대비한 일본의 쌀 가격정책과 국내 합의도출 과정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86년부터 쌀의 수매가격을 인하해 국내외 가격차를 줄여왔다. 특히 관세화에 대비해 1998년부터 쌀 가격하락분의 일정 수준을 보전하는 도작경영안정대책을 실시했다. 시장개방 확대에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해온 것이다.
한편 관세화 전환을 앞두고 政(자민당)ㆍ官(농림성)ㆍ農(농협)의 ‘WTO 3자 회의’가 설치돼 관세화에 따른 국내 갈등을 줄였다. 즉 농민단체는 관세화를 수용하는 대신 정부 쌀 정책의 기본방향을 확보하고(국내 농업을 기본으로 한 식량의 안정적 공급 등) 국회는 이를 보증하는 형식으로 갈등 소지를 최소화했다.
관세화 이후 일본의 쌀 수입은 TRQ(Tariff rate Quotas; 저율관세할당) 물량 외에는 고율관세에 막혀 연간 100톤 미만에 불과하다. 고급 쌀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바스마티쌀이 소량 수입되고 있으며, 용도도 시험용이나 건강식품용, 외국인용이 주종이다. 사실상 TRQ 물량을 초과한 쌀 수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영무역을 통해 TRQ 수입물량 전량을 정부가 매입해 시장상황을 고려해 관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입쌀 판매는 가급적 국내 쌀시장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공용 위주로 공급하고, 나머지는 비축하면서 해외 원조용이나 사료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경우 중도에 쌀을 관세화함으로써 TRQ 물량을 약 8만톤 줄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고율의 관세상당치 설정을 통해 사실상 TRQ 물량 외의 쌀 수입을 효과적으로 막았다. TRQ 물량 수입도 국영무역을 통해 국내시장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게끔 사료용이나 원조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중도 조기 관세화를 통해 쌀 수입량을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수입쌀을 관리하는 대표적인 쌀 관세화 성공사례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