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J 인스티튜트는 2005년 9월 설립된 농업ㆍ농촌 분야 전문 민간연구소다. 연구소를 설립한 이정환 이사장(68세)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출신으로 농업ㆍ농촌 분야 국내 대표 학자다. 이정환 이사장을 만나 우리 쌀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는지, 불안한 농가를 위한 대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물어봤다.
정부가 내년부터 쌀을 관세화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어떻게 보나? 쌀 관세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WTO 시스템 안에 있는 한 안 할 수는 없다. 단, WTO의 일반조항으로 웨이버(waiver)가 있는데 이에 해당할 경우 관세화를 안 할 수 있다. 웨이버조항은 회원국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 도저히 의무이행이 어려울 경우 일시적으로 의무이행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긴급피난적 성격을 띤다. 이는 쌀뿐 아니라 모든 물품에 적용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웨이버에 해당하나? 20년 동안 관세화를 유예해 놓고 이제 긴급상황이 발생해 의무면제를 받아야겠다고 하면 어느 회원국이 인정해 주겠나. 인정받으려면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진 않지만 우리한테 충분한 보상을 해주면 우리가 조금 봐줄게.’ 이런 상황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우리 쌀산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관세화를 하느냐만 남은 상황이다.
관세가 예상대로 500% 이상 된다면 관세화 해도 쌀 수입은 크게 늘지 않을 것 같다. 관세를 500% 이상 매길 경우 내년에 국내에 들어오는 미국 쌀의 가격은 80킬로그램당 50만원 가까이 된다. 국내산 쌀 가격이 17만원 정도하니 3배 가까이 비싼 셈이다. 태국 쌀은 미국 쌀의 반값 정도 되는데 그렇다 해도 20만원이 넘는다. 누가 사먹겠는가. 따라서 실제로 일반 소비자들이 수입쌀을 사먹을 일은 없다고 봐도 된다. 물론 앞으로 국제쌀값이나 환율이 아주 많이 떨어질 수는 있다. 그렇다 해도 2023년쯤에도 미국 쌀은 한 30만원, 태국 쌀은 한 18만원 이상 될 거다.(※ 정부는 지난 9월 18일 쌀 관세율을 513%로 결정했다. 이 인터뷰는 9월 11일에 진행된 것이다.)
우리가 매긴 대로 관세율이 정해질 수 있나? 우리가 정한 관세율을 WTO에 통보하면 WTO는 회원국들에 이 내용을 회람시키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UR 협정에서 규정한 대로 우리가 자료를 맞게 썼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국내 도매가격은 대표도매가격을 쓴 것인지, 왜 중국가격을 썼는지, 미국은 왜 자국 수출가격을 쓰지 않았는지 등을 따지겠지만 우리가 한 것이 틀렸다고 입증하지 못하는 한 우리 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검증기간이 오래 걸린다. 일본은 2년 걸렸고, 대만도 5년 걸렸다. 우리도 아마 이의 있다고 하는 나라들이 많을 텐데 그 나라들하고 앞으로 계속 얘기해야 한다. 하지만 검증기간과는 별개로 내년 1월 1일부터는 정부가 발표한 관세율대로 쌀 수입은 자유화된다.
FTA나 TPP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고율관세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현재 주요 쌀 수출국이 미국ㆍ태국ㆍ중국ㆍ인도인데 그런 나라들과는 쌀을 양허 제외한 상태로 FTA를 하고 있다. 중국은 협상 중이지만. 문제는 앞으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나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인데, 우리나라 어느 정부가 쌀 관세를 철폐하고 TPP를 한다고 할 수 있겠나. 20년 미래는 예상할 수 없지만 앞으로 10년 이내에 쌀을 관세 철폐하는 조건으로 TPP에 참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본다.
수입이 자유화되면 결국 품질ㆍ가격 경쟁력이 중요해질 텐데, 우리 쌀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식품이라는 것은 가격보다도 맛이 있느냐, 신뢰할 수 있느냐, 안전하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쌀도 마찬가지다. 안전성이나 맛, 기능성, 편리성이 중요하다. 농가들, RPC(미곡종합처리장), 유통업체들이 소비자의 신뢰나 선호도를 지킬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안전하고 좋은 쌀을 생산하고 브랜드의 품질관리도 더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우리 쌀은 안전하고 항상 맛이 균일하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또 하나 우리나라는 농가별로 기계나 시설을 소유하고 있어 생산비용이 많이 든다. 각 농가가 트랙터 한 대를 사서 일년에 며칠 쓰고 만다면 얼마나 비효율인가. 조직화를 통해 기계나 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들녘별경영체나 농기계은행 같은 것들이 더욱더 발전해야 한다.
관세화로 불안한 농민들을 위한 대책은 없을까? 자유화는 굉장한 변화다. 관세가 높기 때문에 거의 들어오지 않으리라 예상은 되지만 지금부터는 누구든 어느 나라에서든지 쌀을 마음대로 사올 수 있다. 차원이 바뀐 거다. 거기에 대한 불안감을 확실하게 잠재우는 게 정부가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일이다. 그러려면 첫째, 앞으로 FTA 등 협상 시 쌀은 양허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정부가 명확히 해줘야 한다. 둘째, 수입쌀이 들어와서 국내산 쌀값이 떨어져도 그 피해가 농가에 전부 다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을 확실히 해줘야 한다. 쌀에는 목표가격보다 쌀값이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보전해 주는 변동직불제가 있다. 목표가격은 시중가격을 반영하는데, 관세화로 시중가격이 확 떨어지면 목표가격도 떨어질 것 아닌가. 농민들은 그것을 불안해하는 거다. 따라서 변동직불제도를 전면 개편해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의 손실을 실질적으로 보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 불안감을 없애야 젊은이들이 새로 쌀산업에 들어오고 쌀농업 투자도 이뤄질 것이다.
농업 선진화를 위해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나라가 있다면? 보통 농업선진국 하면 네덜란드나 뉴질랜드를 예로 많이 드는데, 저는 스위스를 소개하고 싶다. 스위스 농업정책은 국민들이 원하는 농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 농업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소비자들은 우리 농산물에 대한 간절한 욕구와 집착이 있다. 중국산 농산물이 아무리 싸도 가능하면 우리 농산물을 먹으려 하지 않나. 이런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우리 농산물을 사시사철 싼값에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또 국토공간이라는 것이 해외여행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국민들의 간절한 욕구가 있다. 농촌이 아름답고 깨끗해서 거기에 가서 캠핑을 하거나 민박을 하고 그 지역 농산물과 특산물을 사먹고 사가지고 오기도 하는, 이런 것들이 국민이 원하는 것 아닌가. 그런 공간을 우리 농촌이 충족시켜 줘야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국민들이 우리나라 농업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우리 농업이 소비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농산물을 생산하지 못해 모두 수입농산물을 사먹어야 된다면, 우리나라 농촌이 어딜 가도 아무런 특산물이 없다면, 농촌이 황폐화되고 농가도 없다면…. 우리 농촌이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건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나. 농업이나 농촌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농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바로 모든 소비자와 모든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그런 면을 꼭 생각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