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다년간의 법·제도 개선 노력에도 성폭력에 대한 불안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발표된 여성가족부의 성폭력실태조사와 검찰청에서 발행된 범죄통계엔 성폭력 발생 신고건수와 검거건수가 모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여성들은 밤길을 혼자 걷기 어려워하고, 만원의 대중교통 이용 시 성추행 피해를 우려하며, 직장 내 성폭력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등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여성들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 권리가 사회적으로 실현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성폭력피해자를 만나고 그들의 수사·재판과정을 지원하는 현장의 성폭력전문상담원들은 성폭력 범죄자 기소율과 처벌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렵게 신고된 성폭력도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 2013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의 기소율도 43%라는 절반 이하의 수치로 나타났다.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과 기소율이 낮은 이유는 ①물리적 증거나 목격자가 많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 ②80% 이상의 성폭력 사건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건 이전에 알고 지내던 관계이나 수사기관이 성폭력 발생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사적 관계를 이유로 성폭력 발생 가능성을 낮게 보는 등 피해자 진술이 의심받는 경우가 많은 현실 ③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에 대한 한국사회의 잘못된 통념(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신경정신과적 문제가 있으며 사회생활을 못할 것이다 등)이 수사·재판과정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러한 잘못된 통념이 피해자의 신고를 주춤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 ④ 직장이나 대학 내 성폭력과 같은 공동체 내 성폭력의 경우 각 공동체 안에서 해결이나 자정노력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으대므로 피해자들이 신고 후 불이익을 우려해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사·재판제도상의 개선점뿐만 아니라 성폭력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집계하는 상담통계에 따르면 놀랍게도 성폭력피해자의 대부분이 자신의 생활반경에서 피해를 입는다. 성인은 직장에서, 청소년은 학교에서, 아동과 유아는 가정에서 성폭력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두운 밤길이나 혼자 있는 공간에서 성폭력에 대한 안전이 확보돼야 한다고 호소하지만 실제 성폭력 사건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성문화를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확보하는 첫걸음이다. 성폭력은 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넘어 한 사회의 젠더구조가 만들어내는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문화는 개인의 의식과 언어에 배어 있기 때문에 변화되기 쉽지 않다. 현재 학교와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의무적인 성폭력 예방교육은 연 1회 교육에 그쳐 그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 공교육 교과서에서 성별고정관념을 담은 삽화를 삭제해 왔던 것처럼 국민들이 생활 영역 곳곳에서 성폭력에 반대하는 민감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각 부처별 인식개선 캠페인사업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예산을 책정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성폭력 근절 노력은 아직 시작 단계다. 성폭력을 여성 개인이 혼자 해결해야 할 수치스러운 사건이나 남녀 사이의 스캔들로 치부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때가 불과 20년 전이다. 이제 성폭력피해자의 권리회복과 가해자 처벌은 국가의 책임 영역이다. 세대가 변할수록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여성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이 안심하는 사회가 되도록 정부의 성폭력 예방 노력은 더욱 절실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