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기본적으로 지역 자원이다. 예를 들어 한강에선 물이 남아돌아도 낙동강에선 극심한 한발을 겪고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물이 시장가격이 비싼 자원이라면 시장시스템이 작동돼 어떻게 해서든 한강에서 낙동강 쪽으로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물은 너무 싸다. 이걸 저장하거나 운반하려면 물의 본래 가격에 비해 워낙 비싼 추가 비용이 들게 된다. 그래서 경제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런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때문에 물은 유역 내에서 중력을 이용한 자연유하 방식으로 공급되는 게 대부분이다.
경우에 따라선 유역을 건너뛰는 물 공급이 이뤄지는 수가 있다. 금강 상류 용담댐에서 저장한 물은 유역 변경식으로 전북지역으로 보내진다. 원래는 하류 대청댐을 거35쳐 충청지역으로 공급될 물이다. 물이 남아도는 영산강에서 장흥댐과 주암댐을 연계 운영하는 방법으로 섬진강 수계로 물을 공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 자원인 물을 유역 밖으로 옮겨가는 일은 감정적 반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물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유역을 건너뛰는 통합적 물관리만 가능하다면 물 공급 문제가 상당히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전력을 동해안ㆍ서해안 지역에서 생산해 대도시로 공급하는 시스템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전력 당국이 발전소나 송전선로 입지 지역에 보상을 해주듯이,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남아도는 곳으로 물을 공급해줄 경우에도 공급지역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보상이 필요하다.
물의 공급수량이 문제되는 것은 주로 농업 용수의 경우다. 먹는 물의 경우는 양보다 수질(水質)이 문제 된다. 우리나라 수질은 굉장히 취약하다. 수돗물을 만드는 원수(原水)를 대부분 표층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300만 인구가 상수원수의 94%를 오염에 노출된 낙동강에서 끌어다 쓴다. 수도권도 2천만명 인구가 거의 팔당에 의존한다. 팔당의 수질이 심각하게 오염되거나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팔당호에 독극물을 집어넣기라도 한다면 어마어마한 사회적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팔당 수질보호에 상당한 재원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생활용수 가운데서도 수질을 너무 따지지 않아도 괜찮은 용도들이 있다. 일테면 세탁, 화장실, 정원에 쓰는 물의 경우다. 그래서 수돗물의 공급방식을 이원화(二元化)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20여년 전 선경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은 기업 관계자들에게 설악산 계곡수를 갖고 간단한 처리를 거쳐 병입수로 수도권 일대에 공급하는 문제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팔당 오염을 관리하는 부담은 한결 덜어진다. 먹는 물, 조리, 설거지 등에 드는 물을 1인당 하루 20ℓ 정도라고 치면 수도권 인구 2천만명에게 하루 40만톤씩만 만들어 공급하면 된다. 현재의 수돗물 공급량의 10분의 1 정도다. 이 병입수는 소비자들로부터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운반-저장 비용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설악산에서 물을 바로 뽑아서 쓸 경우 설악에서 서울까지의 하천은 그만큼 수량공급이 줄어들어 건천화 문제가 생긴다. 먹는 물을 설악산 계곡수로 해결하면 팔당 수질을 포기하는 거냐는 반발이 제기될 수 있다. 운반-배분 과정을 생각할 때 병입수의 단가도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설악산 물 공급’ 아이디어는 더 진척되지 못했다. 그러나 물 문제 해결에 ‘유역 통합 관리’, ‘계곡수를 음용수로’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들도 과감하게 검토해본다면 뜻밖의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