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펙사 벡(Pexa-Vec)이라는 항암 바이러스의 PoC(Proof of Concept; 개념증명)1상 임상을 국내에서 수행했었는데 식약처뿐 아니라 미국 FDA와도 긴밀한 논의로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임상 2상은 미국·캐나다에서 진행됐고 현재 관련 회사는 상업화를 위한 다국가 3상 임상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1상 임상 수행 후 후기 임상을 선진국에서 하게 된 경우는 펙사 벡이 처음이자 지금까지 유일하다.
국내에서 ‘글로벌 초기 임상시험’을 어떻게 해야 하고 후기 임상시험과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제한된 지면에 기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국가 간 임상시험 규제의 조화(Global Harmonization)와 상호인증은 제한적이며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러시아·중국·인도 등 후기 임상시험의 경우 ICH- GCP(글로벌 임상시험관리기준)에 따른 국가 간 임상시험 상호인증은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임상시험의 유효성·안정성과 관련된 견고한 과학적 실험실 연구와 증명이 필요한 PoC 바이오 초기 임상시험의 경우 국가 간 규제의 조화는 쉽지 않다. 따라서 국내에서 PoC 임상시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생각할 경우 미국 FDA와의 직접 소통이 필요하다.
이렇듯 글로벌 초기 바이오 R&D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선 산업계·학계·병원의 융합적 연구를 통해 과학과 의학을 연결할 수 있는 깊은 경험과 통찰력이 중요하며 최고수준의 질적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R&D 현장에서 이와 같은 통합적 연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이공계 전문인력은 거의 없다. 혁신연구를 할 수 있는 정통 과학자도, 질관리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정통 산업계 인력도 찾기 힘들다. 글로벌 수준에서 혁신적 R&D 필드가 부족하다 보니 이것은 당연하다. 상당한 수준의 정부 예산이 R&D비용으로 지출되면서도 제대로 된 인력이 양성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정부뿐 아니라 학계는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면에선 R&D 연구비가 오히려 이공계 R&D 전문인력 양성에 방해가 되고 있다. 국내 우수한 이공계 인력은 R&D로 포장된 연구비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R&D 트랙에 들어갈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기술한 펙사 벡 항암 바이러스 글로벌 임상 3상은 S바이오텍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S바이오텍의 발전은 태동기 바이오 글로벌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10여년 전 엔젤투자자들의 도움으로 S사를 창업했고 현재는 기술이사로 R&D와 산학협력의 핵심모델을 진화시켜왔다. 기관투자가 이뤄지기까지 엔젤투자자들은 연구자들을 무한 신뢰하면서 “실패할 수 있다.”며 부담을 덜어주고 모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렇게 7년 동안 S사는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J바이오텍 전문가들에게 융합연구의 방법, S사의 실험실과 용역연구의 질관리에 대한 방법을 배우며 인력을 양성해 왔다. S사가 글로벌 회사로 제대로 성공한다면 그 공은 7년간 기다려온 엔젤투자자들의 글로벌 R&D에 대한 이해와 인내 그리고 다양한 기관투자자들의 이해관계 속에서도 글로벌 R&D를 위한 산학 융합연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경영진의 단호한 철학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10년의 세월 동안 S사에는 국내에서 초기 임상시험을 하더라도 글로벌 수준의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가 구축됐다. 이는 차세대 혁신을 기반으로 과학과 의학을 융합할 수 있는 글로벌 개발 환경이 될 것이다.
신약의 글로벌 상업화 성공도 중요하지만 신약 R&D 자체가 핵심적인 산업이다. R&D 인프라 없이는 글로벌 제약사가 만들어질 수 없다. 아직 정부는 신약의 글로벌 상업화에 몰두한 나머지 산업으로서의 R&D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