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 이슈] 하이라인 파크 VS 로라인 파크, 뉴욕의 혁신적 지상·지하 도심재개발 사업
뉴욕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고 그 아이디어가 현실로 실현되는 몇 안 되는 혁신의 본거지 중 하나다. 이런 뉴욕을 처음 찾는 관광객들은 주로 어디를 가보고 싶어 할까? 가장 인기 있는 곳들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록펠러 센터, 센트럴 파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5번가 쇼핑거리(5th Avenue) 등이 있지만, 최근 급부상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다.
하이라인 파크는 맨해튼 중심부에서 벗어난 남서쪽,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길게 늘어서 있는 연장 2.3km의 산책로용 도심공원을 말한다. 원래 웨스트사이드라인(West Side Line)이라는 뉴욕도시철도회사의 철로로 사용되던 곳으로, 자동차의 번성으로 내버려진 좁고 황폐한 철로부지에 불과했던 이곳을 1999년 도심공원으로 재활용하자는 지역주민들의 아이디어로 리노베이션돼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도심재개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연간 5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으며, 나아가 제2, 제3의 하이라인 파크를 만들어 보자는 유사사례가 필라델피아, 세인트루이스, 시카고 등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보기 드문 성공으로 ‘하이라인 효과(High Line Effect)’라는 용어까지 회자되게 만들었는데, 이는 기존에 내버려져 있는 도심시설을 재활용해 성공적인 문화복합공간으로 재창출해내는 것을 통칭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뉴욕을 다녀간 많은 사람이 대충은 보고 듣고 느꼈던 다소 익숙한 내용이다. 그런데 필자는 우연히 하이라인 파크를 뛰어 넘는 아이디어가 실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솔라테크놀로지까지 활용한 미래지향적 개념인 로라인 파크(Low Line Park) 계획이 맨해튼 남동쪽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이번 호에서는 그 자세한 내용을, 뉴요커들의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쇼케이스, 로라인 랩
로라인 파크는 말 그대로 지하공간을 활용해 나무와 풀을 키우고 지상과 동일한 환경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복합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여러 가지로 하이라인 파크와 상반되는 측면이 있는데, 우선 지상이 아닌 지하(underground)라는 면에서 하이라인 파크와 대비되고, 하이라인이 맨해튼 서쪽에 위치해 있다면 로라인은 그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다만 더 이상 쓰지 않는 트롤리의 터미널(Trolley Terminal) 지하공간을 누구나 활용 가능한 복합공간으로 만드는 일종의 도심재개발 사업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하겠다.
로라인 파크는 2015년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사업으로, 2020년 완성을 목표로 지금은 로라인 랩(Lowline Lab)이라고 불리는 소규모 쇼케이스 공간을 주말에 한정해 일반에 오픈하고 있다. 로라인 랩은 맨해튼 남동쪽(Lower East Side) 에섹스 스트리트(140 Essex St.)에 위치해 있고, 향후 만들어질 로라인 파크로부터 두블럭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랩은 로라인 파크가 성공적으로 작동 가능한지, 또 지하에서 식물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고 그 성공사례를 보여주는 쇼케이스용 연구실이다. 천장에는 특수금속으로 제작된 캐노피(canopy)와 광튜브가 설치돼 지상의 햇빛을 손실 없이 전달하도록 설계돼 있고, 이런 햇빛 아래 설치된 목조 계단식 테라스 주위에는 무려 6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랩은 전체 35평 규모(1,200sq feet)로 로라인 파크 면적의 5%에 불과하지만, 실제 로라인 파크를 충분히 체험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다.
로라인 파크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녹지공간을 더 많이 조성함으로써 도시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자는 것이며, 특히 이를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사업 추진자들은 이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세계 유수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회사(Arup)와 부동산 개발 및 에너지효율 컨설팅 회사(HR&A dvisors)의 자문을 구한 결과, 이 계획이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할뿐 아니라 인접 지역의 경제와 커뮤니티 활동을 활성화하는 다이내믹한 문화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렇듯 로라인 파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제는 쓸모없어진 전통적 유산을 도심재개발을 통해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한편, 21세기형 테크놀로지에 근거한 미래도시의 혁신적인 모형을 제시하는 것이다.
핵심기술, 리모트 스카이라이트
관건은 어떻게 햇빛을 지하공간까지 충분히 끌어오느냐 하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창안자인 제임스 램지(James Ramsey)는 ‘리모트 스카이라이트(Remote Skylight)’라는 방안을 고안했는데 햇빛을 포물선 모양의 컬렉터(collector)의 유리막을 통해 한 곳(focal point)으로 모으고 이를 지하로 전달해 햇빛 분사판의 반사면을 통해 지하 곳곳을 비추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전달받은 햇빛은 지하 식물의 광합성을 가능케 해 식물이 성장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해 준다. 실제 로라인팀은 2012년 9월 인근 지하창고에 이 기술의 프로토타입을 설치해 언론을 대상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단 2주 동안에 무려 1만1천명이 넘는 방문객을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낮 동안은 지하를 환하게 밝히는 데 전혀 전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로라인팀의 기술적인 완결성을 대외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로라인 파크 창안자인 제임스 램지와 댄 바라시(Dan Barasch)는 혁신적인 건축가이면서 최신 금융기법을 활용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들은 2009년 로라인 파크를 조성하는 데 의기투합했고, 자금 모집을 위해 2012년 2월부터 크라우드펀딩 회사인 킥스타터(Kickstarter)를 활용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단기간에 전 세계 3,300명의 서포트들로부터 총 15만5천달러를 모금해 당시로는 도시디자인 프로젝트 분야에서 가장 많은 서포트를 확보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운영 중인 로라인 랩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6개월간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솔라테크놀로지 기술을 선보이고 이를 통해 다목적 문화 복합공간으로 변신 가능하다는 것을 홍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아울러 뉴욕의 동절기 동안 적은 일조량에 지하 식물이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를 함께 관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음지를 양지화하는 ‘문샷 싱킹’
뉴욕 맨해튼 서쪽의 하이라인 파크는 기존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고 공원으로 용도를 변경한 ‘10% 다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맨해튼 남동쪽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라인 파크는 기존의 사고를 ‘100% 변혁’시킨, 이른바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의 예라 하겠다. 달(moon)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망원경의 성능을 10% 개선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달에 직접 가서 달을 관찰하고 말겠다는 혁신적인 생각인 것이다. 인류가 봉착한 에너지 위기와 관련해서도 지상의 버려지는 햇빛자원을 지하로 끌어들여 알차게 활용하는 이 방안은 로라인 파크와 상관없이도 중요한 기술적 혁신임에 분명하다. 2015년 로라인 랩이 그리는 우리의 미래가 2020년 로라인 파크로 온전히 거듭날 수 있을지 사뭇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사항은, 로라인팀에 당당하게 이름을 내걸고 있는 건축가 중에 2명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리모트 스카이라이트 기술을 구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자재인 컬렉터를 만드는 회사가 다름 아닌 ‘선포탈(Sun Portal)’이라는 한국 회사란 점도 관심 있게 지켜볼 사항이다. 이 컬렉터는 단순히 햇빛을 모으는 기능을 넘어 햇빛 중 적외선은 제거하고 자외선은 보존할 수 있어야 하는 고첨단 제품인데, 이를 우리 기업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로라인팀의 미래에 겹쳐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인과 한국 기업들이 2020년 미래에는 어떻게 혁신을 주도하고 있을지 큰 기대를 갖고 지켜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