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28개 회원국에 인구 5억명, 전 세계 GDP의 약 24%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와의 교역규모는 1,053억달러로 중국과 미국에 이어 제3위 교역상대이며 우리나라에 대한 최대 외국인 투자주체(EU가 812억달러, 미국이 624억달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EU의 경제적 중요성을 인식해 2011년 7월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킨 바 있다. 그러나 FTA 발효 이후 2012년 EU에 대한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됐으며, 2014년에는 107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EU와의 교역현황은 수출을 통해 먹고사는 우리나라에 많은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한-EU FTA 발효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적 한파는 전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유럽에는 더욱 가혹한 영향을 줬다. 금융위기에서 회복하기도 전에 2011년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됐다. EU 전체에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 가중됐으며, 영국을 중심으로 EU 무용론과 탈퇴론까지 제기되면서 EU 통합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EU의 소비수요가 급격히 위축됐고 이는 우리나라의 EU 무역수지 적자 확대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세계경제 호조기(2006~2008년 상반기)에 수주한 선박이 인도되면서 선박 수출이 2010년 137억달러에 육박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2013년 58억달러로 떨어지며 수출 급감을 초래했다. 다행히 선박수출은 2014년 64억달러, 2015년 85억달러로 대EU 1위 수출품목의 위치를 회복했다. 아직 전성기 수준엔 미치지 못하나 EU가 현재와 같은 경제회복 추세를 지속할 경우 추가적인 수출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 불어닥친 한파와 급변하는 교역환경
주요 수출품목이었던 자동차와 무선통신기기 분야는 최근 우리 기업의 생산기지가 국외로 이전되는 등 글로벌 생산구조가 변화됨에 따라 수출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은 2006년 91억6천만달러를 기록했으나, 슬로바키아 기아자동차 공장이 2007년, 체코 현대자동차 공장이 2008년 양산을 개시하면서 수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겹친 2009년엔 최저치인 27억7천만달러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EU 경제회복과 함께 7월 발효된 한-EU FTA의 영향으로 57억8천만달러로 회복됐으나 그 이후 FTA에 따른 추가 관세인하에도 불구하고 유럽 재정위기와 EU 역내에서 우리 기업들의 직접적인 자동차 생산으로 수출액은 매년 50억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EU 역내 생산공장을 운영함에 따라 안정적인 한국산 자동차부품 수출이 가능해져 유럽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출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까지 주요 수출품목이었던 무선통신기기의 경우 우리 기업의 생산기지가 중국, 베트남 등으로 이전되면서 한국산 제품의 EU에 대한 수출액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EU에 대한 수입액은 한-EU FTA 발효 이후 일본산 소재·부품에 대한 수입대체 효과와 함께 유럽산 자동차와급 소비재에 대한 국내 소비자 선호 증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란 제재에 따라 원유 대체 수입원을 찾는 과정에서 한-EU FTA가 발효돼 기존 3%였던 원유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고 영국산 브렌트유가 수입되기 시작한 것 역시 수입증가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즉, EU의 경기부진과 우리나라의 글로벌 생산구조 변화에 따라 EU에 대한 수출은 감소하고 있는 반면, 소재·부품의 수입대체, 자동차와 고급 소비재에 대한 국내수요 증가, 원유 수입대체 등으로 수입은 증가해 한-EU FTA 발효 이후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였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EU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한국산 제품의 비중은 2004년 3.0%에서 2014년 2.3%로 지난 10년간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그동안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취해 온 중국산 제품의 비중확대에 기인한 것으로, EU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중국산 제품의 비중은 2004년 12.6%에서 2014년 18.0%로 확대됐다. 일본산 제품의 비중이 2004년 7.3%에서 2014년 3.2%로 급감한 점을 감안할 때, 그나마 한국산 제품이 EU 수입시장에서 선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일본 정부가 EU와의 FTA 체결을 통해 EU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는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FTA 활용해 수출 부가가치 높여야
EU는 결코 쉬운 시장이 아니다. EU는 28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이 유지하고 있는 공식 언어만도 24개에 이른다. 환경, 소비자 보호, 경쟁법 등의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더욱이 EU 회원국 중에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고품질의 우수한 브랜드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는 선진국들이 많으며, 제품 운송 및 인지도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역내 회원국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의 시장접근이 만만치 않다. 다만 아직까지는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만이 EU와 FTA를 체결해 발효시킨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EU시장에서 유리한 환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7월 1일 발효된 한-EU FTA는 양측이 수입하는 품목에 대해 99.6%의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으며, 발효 5주년을 맞이하는 올 7월 1일을 기해 EU가 약속한 모든 품목에 대한 관세철폐가 완성(전체 품목의 99.6%, 공산품 기준 100% 철폐)된다. 또한 한-EU FTA 체결을 통해 유럽기업들에 대한 우리 기업의 이미지가 제고돼 우리 중소기업들의 글로벌화에도 유리한 여건이 조성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혜 교역구조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EU는 최근 아시아를 세계 경제성장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EU의 경제이익 확보를 위해 중국과의 투자협정, 일본 및 ASEAN과의 FTA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경쟁국들 역시 순차적으로 EU시장에서 우리와 동등한 조건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세계경제는 공급과잉 및 수요부진으로 양적 성장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기술추격 심화 및 선진국의 제조업 부활로 우리 기업들의 대외 교역환경은 악화되고 있어 기존 신흥국시장에 대한 수출 중심의 양적 성장전략만으로는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향후 우리 경제는 EU를 포함한 고부가가치 선진시장에 적극 진출해 우리 상품과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그동안 체결한 FTA(총 14건, 51개 국가와 FTA를 이행)를 활용해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서 수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한-EU 교역관계 역시 기존 주요 수출품목이었던 선박, 자동차, 무선전화기 등 완성품 위주의 수출구조에서 중소 제조기업이 생산하는 소재·부품 비중을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EU는 우리나라에 대한 제1위 외국인 투자주체이며 최근 우리나라 역시 동유럽을 중심으로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있어 상호 부분품 위주의 교역을 확대해 나갈 여지가 크다. 우리나라가 최근 EU에 대해 자동차부품, 축전지, 석유화학합성원료, 냉연강판 등 품목의 수출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추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우리나라의 자동차부품 수출은 2014년 7.3%에 이어 8.6% 증가, 축전지 수출은 2014년 31.3%에 이어 30.4% 늘어났으며, 석유화학합성원료 수출은 2014년 3,330% 증가에 이어 41.5% 증가, 냉연강판 수출은 2014년 20.8%에 이어 42.7% 증가하는 등 수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MTI 4단위 기준).
반면 우리 기업의 해외생산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승용차, 무선전화기, 컬러TV 등의 경우 우리 제품의 EU 수출은 2015년에도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 우리나라의 승용차 수출은 2014년 2.8%에 이어 9.8% 감소, 무선전화기 수출은 2014년 27.4%에 이어 48.8% 감소, 컬러TV 수출은 2014년 14.1%에 이어 17.8% 줄어들었다.
정부 정책 역시 내부적으로는 기존 단순조립 산업에서 소재·부품산업 중심으로 우리 제조업 성장방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지원하는 한편, 해외 마케팅 역량과 자원이 부족한 중소 소재·부품 기업들의 EU선진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2015년 9월 15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EU 정상회담에서 FTA 기대효과를 양측 모두 균형적으로 누리기 위해선 FTA의 완전한 이행과 양자 간 교역규모의 증가가 중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EU와의 균형적 교역증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기업 및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세계 최대 선진시장인 EU시장은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