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은 1986~1988년을 기준으로 감축대상보조상한(Total AMS)을 계산했다. 여기서부터 선진국은 6년간 20%, 개도국은 10년간 13.3%만큼을 줄였다. 2001년 시작된 DDA 협상은 보조를 많이 하는 국가가 더 많이 감축키로 하는 한편,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AMS에서 제외한 최소허용보조(de minimis)와 블루박스(Blue Box)를 모두 포함한 OTDS(무역왜곡보조총액) 개념을 도입키로 했다. 그렇지만 DDA 협상은 아직 지지부진하고, 합의 직전까지 갔던 2008년 여름과 그해 겨울, 농업 모델리티 초안(Rev.4)이 아쉬운 대목으로 회자된다.
국제사회에도 유행어(buzzword)가 있다. 여전히 ‘기후변화(climate change)’, ‘개발(development)’ 등이 가장 흔하지만 수식어로 가면 포용적(inclusive), ‘지속 가능한(sustainable)’이 자주 눈에 띈다. WTO 관점에서 보면 특정 국가나 상품이 소외되지 않도록 공정한 규칙을 확보하는 것이 전자, 무역을 통한 성장의 과실이 당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후자로 볼 수 있다.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시절 다자 협상은 주로 관세를 낮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WTO는 특혜무역협정(FTA 등)과 복수국 간 협정(ITA 등)에 밀려 정작 다자 관세협상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3년 발리와 지난해 나이로비 각료회의에서 거둔 성과도 무역 원활화, 농산물 수출보조금 폐지 등이었다. 더 이상 일괄타결원칙(single undertaking)이 유효하지 않기에 제네바 협상도 이제 현실적으로 합의 가능한 것에 집중하고 있다. 내년 제11차 각료회의의 성과물로 국내 농업보조(domestic support)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이다.
농업보조금 규율은 UR에서 시작, WTO가 유일한 창구
공정에 대한 요구는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불평등의 속성상 객관적인 지표와 처방에 합의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도국과 선진국, 수출국과 수입국 모두가 다른 이유를 내세워 동등한 경쟁(level playing field)을 요구한다. 특히 미국은 국제교역 현실이 이전과 달리 많이 변했으니 DDA 출범 초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선 최근 제네바 논의 상황을 기초로 농업보조 문제를 이해하고 간략히 협상의 진행을 전망해 본다.
먼저 국내 농업보조라는 개념은 우루과이라운드(이하 UR) 협상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보조금(subsidy)에 더해 실제 지원을 받지 않았더라도 신청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물량(eligible production)을 가격보조 계산에 포함해야 한다. OECD의 PSE(Producer Support Estimate; 생산자지지추정치를 뜻하는 것으로 국내외 가격차 등으로 계산)와는 다르지만 용어에서 보듯 차용한 흔적이 있다.
현행 농업협정은 1986~1988년을 기준으로 감축대상보조상한(Total Aggregate Measurement of Support; 허용보조와 블루박스를 제외하고 농업협정상 제공된 보조 수준을 화폐 단위로 총액화한 것)을 계산했다. 여기서부터 선진국은 6년간 20%, 개도국은 10년간 13.3%만큼을 줄였다. 2001년에 시작된 DDA 협상은 보조를 많이 하는 국가가 더 많이 감축키로 하는 한편,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감축대상보조(이하 AMS)에서 제외한 최소허용보조[de minimis; 보조총액이 농산물 생산액의 5%(개도국은 10%) 미만인 경우 총액 계산에 제외]와 블루박스(Blue Box; 생산 제한을 조건으로 지원되며 감축면제)를 모두 포함한 OTDS(무역왜곡보조총액)개념을 도입키로 했다. 그렇지만 DDA 협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합의 직전까지 갔던 2008년 여름과 그해 겨울, 농업 모델리티 초안(Rev.4)이 아쉬운 대목으로 회자된다.
WTO에 통보한 최근 실적과 FAO(유엔식량농업기구) 데이터 등을 활용하면 국별 비교가 가능하다. 우선 농업규모 자체로 보면 미 달러로 환산한 총생산액(Value of Production)은 미국 3,966억달러(2012년), EU 4,862억달러(2012년), 중국 9,501억달러(2010년), 인도 2,087억달러(2010년), 일본 869억달러(2012년), 우리나라가 389억달러(2011년)이다. 즉 우리나라 농업생산액 규모에 비해 미국은 10배, EU는 12배이고 중국 24배, 일본은 2배가 조금 넘는다. 한편 각국 AMS 한도는 환율차이 등이 있지만 대략 미국 191억달러, EU 957억달러, 일본 405억달러, 우리나라 13억달러 정도이다. 중국과 인도에는 AMS 자체가 없다. 농업발전 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특정 연도(1986~1988년)를 기준으로 AMS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도국은 최소허용보조비율을 20%(총생산액 대비 품목특정 10%, 불특정 10%)로 높게 잡아 줬고, 개발프로그램이라고 협정문 6.2조에 규정된 별도 지원(저소득·자원빈곤 농가에 대한 투자 보조 및 투입재 지원)을 예외로 인정받았다. 중국의 경우는 2001년 가입 협상에서 6.2조를 인정받지 못했고 최소허용보조 역시 8.5%로 줄여 합의했다. AMS만으로는 국가 간 비교가 공정하지 않고 허점도 많다고 불평하는 이유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난 5월 호주 등이 ‘농업협정 6조 보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제시했다. 이는 AMS(6.3)와 최소허용보조(6.4), 블루박스(6.5), 개발프로그램(6.2)을 더한 개념이다. 이것으로 2006~2010년 평균 지원금액을 비교하면 미국 115억달러, EU 344억달러, 중국 113억달러, 인도 230억달러, 일본 68억달러, 우리는 8억달러 정도된다.
물론 2006년 이후에는 국제 농산물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에 선진국은 농가지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 인도는 비료·농약 등 투입재 보조비율이 높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변화의 징후를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선진국들은 대부분 6조 보조가 아닌 직접지불금, 영양프로그램, 보험 등 그린박스(Green Box; WTO 농업협정상 무역 및 생산왜곡 효과가 없거나 미미한 것으로 간주돼 감축의무가 없는 보조) 형태로 지원한다. 즉 무역왜곡보조와 전체적인 농업보조의 규모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 등 남미 4개국 네 가지 옵션 제시…합의 열쇠는 미·중이 쥐고 있어
각국의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 비교보다는 경지면적당 혹은 농민 1인당 등 상대 비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농경지, 농민에 대한 국제 공통의 정의가 없고, 통계의 신뢰에도 차이가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무역왜곡보조의 윤곽을 살피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지면적으로 보면 ha당 보조금액은 미국 28달러, EU 180달러, 중국 22달러, 인도 128달러, 일본 1,473달러, 우리는 445달러 정도다. 농민당 지원액은 미국 5,324달러, EU 3,227달러, 중국 35달러, 인도 114달러, 일본 2,570달러, 우리는 478달러로 비교할 수 있다.
7월에 와서 브라질 등 남미 4개국은 국내 보조 논의 진전을 위한 네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첫째는 OTDS와 같은 포괄상한 설정이 여전히 필요한지 아니면 대안으로 총생산액(VOP)과 6조 보조를 연계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묻고 있다. 생산액 대비 6조 보조의 비중은 미국 5%, EU 10%, 중국 1%, 인도 11%, 일본 10%로 나타났다. 둘째, UR 방식을 유지하되 블루박스를 추가해 감축하는 방안이다. 셋째, 새로운 규율을 추가해 품목별 보조상한을 두는 방안이다. 현행 AMS는 최소허용보조와 달리 총액 상한만 있고 개별 품목별 상한은 없다. 그래서 면화처럼 쟁점 품목 혹은 주요 품목에 상한을 두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넷째, 국내 보조를 받는 품목 중 수출 비중이 높은 경우를 우회 수출보조로 볼 수 있다면 추가로 규율하자는 방안이다.
농업보조 문제는 교역을 넘어 국내외 정치역학과 관련되기 때문에 합의점 모색이 쉽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는 내년 말 제11차 각료회의가 열린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최근 협상은 호주, 브라질, 수출개도국들이 맨 앞에 서고 EU가 이를 받아 절충하려는 모습이다. UR에서 늘 수세적으로 대응했던 EU가 농업보조 이슈를 먼저 요구하는 현 상황은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합의에 이르는 열쇠는 미국과 중국이 쥐고 있다. 미국은 자국 농업법(farm bill)을 손대지 않는 정도의 AMS 여유분(속칭 워터) 제거는 검토할 수 있지만 중국도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중국은 AMS가 없기에 더 내줄 것이 없다고 대응해 왔고 그래서 협상이 교착돼 왔다. 내년 각료회의 목표로 가을부터는 미국이 말하는 새로운 접근이 무엇인지, 농업보조에서 브라질 등이 말하는 대안 모색이 가능한지를 두고 치열한 논의가 전개될 것이다.
수입국으로 농업협상에 수세적인 우리로서는 지난 10여년간의 논의 성과를 존중하면서 일본, 스위스 등 G10과 공조 및 이슈별 개도국 연대를 통해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나가는 것이 당면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