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국가별 가계부채 수준을 비교할 때는 가계처분가능소득, 명목GDP, 가계금융자산 등의 채무상환능력(분모) 대비 가계부채(분자)의 비율 통계를 활용한다. 각 지표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가계부채비율은 미국, 영국 등 영미계 국가나 독일, 프랑스 등 여타 유럽 국가들을 상당 폭 상회하는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북유럽 국가는 높은 조세부담을 바탕으로 보편적이고 포괄적이면서도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며 유로화 미사용국으로 자국 중앙은행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다.
주요 OECD 국가들의 가계부채비율(자금순환표상의 개인부채로 가계처분가능소득 대비 기준)을 비교해 보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덴마크가 284%로 가장 높은 가운데 노르웨이, 스웨덴이 각각 227%, 179%로 우리나라(170%, 2015년 가계신용통계 기준으로는 144%)는 물론 주요국(미국 113%, 독일 94%, 일본 132%)을 크게 웃돌고 있다. 과거 추이를 보더라도 이들 국가의 가계부채비율은 추세적으로 높은 수준인 데다 상승 속도도 매우 빨라 지난 20년간 이 비율이 2배 가까이 확대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덴마크의 가계부채비율이 네덜란드, 미국, 영국 등과같이 하락 전환된 반면,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같이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한편 명목 GDP 또는 가계금융자산 대비 가계부채비율도 대체로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나 여타국과의 격차는 크게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제도가 잘 발달한 덴마크 가계부채비율 월등히 높아
북유럽 국가들의 가계부채비율이 높은 배경은 주요국에서도 관찰되는 공통요인과 이들 국가만의 특이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통요인으로는 주택가격 상승 및 금리 하락, 금융혁신 진전 등이며, 특이요인으로는 연금제도의 발달, 모기지대출에 대한 세제지원 등을 각각 들 수 있다. 먼저 주택구입이 가계부채 창출의 주요 동인이라는 점에서 주택가격과 가계부채는 강한 정(+)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금융위기 발생 직전까지 일본, 독일 등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현상이 동시에 발생했다.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간 인과관계는 양방향으로 작동하는데 주택가격 상승은 가계의 추가대출을 유도하고 담보가치 상승에 따른 대출제약 완화로 가계부채 증가를 견인한다. 또한 가계의 대출제약 완화 등에 기인한 주택수요 증가는 주택공급이 비탄력적인 상황에서 주택가격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주택가격이 장기간 높은 상승세를 지속했다. 이는 위기 이후 거시안정화정책과 더불어 노동·공기업·금융·사회복지 등 경제 각 부문에서 미시적 구조개혁을 병행 추진한 데 힘입어 경제체질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견조한 경제성장세 지속으로 가계소득이 증가한 가운데 시장금리가 꾸준히 하락해 주택구입 등 모기지 관련 대출수요가 늘어난 것도 주택가격 상승에 기여했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덴마크에서 주택가격이 하락으로 전환된 것과 달리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주택가격이 일시적인 조정을 거친 후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는 금융위기를 전후로 덴마크와 노르웨이·스웨덴의 가계부채비율 움직임이 서로 엇갈리게 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둘째, 지난 수십년간 금융자유화와 금융혁신의 영향으로 주요국에서는 저소득 계층 및 최초 주택구입자들의 대출시장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1980년대에 금융자유화가 비약적으로 진전됐으며 1990년대 들어선 금융혁신을 배경으로 모기지대출과 관련한 다양한 신상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모기지 조기상환조건 완화 및 만기 장기화, 변동금리 및 거치식·만기일시상환 대출취급 확대, 높은 LTV 비율 적용을 통한 자산증식 저당 대출(mortgage equity withdrawal; 주택가격 상승 시 상승분만큼 추가대출을 받는 제도) 활성화 등이 이에 해당된다.
미래소득 보장 믿음이 가계의 부채보유 성향 높여
셋째, 주택가격 상승, 금리 하락, 금융혁신 진전 등이 여타국에서도 관찰되는 공통요인이라면 연금제도 발달은 북유럽 국가들의 가계부채비율이 유독 높은 이유를 설명하는 특이요인에 해당된다. 연금제도발달은 가계로 하여금 은퇴 후에도 적정 규모의 미래 소득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시켜 부채 창출 및 상환 행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가계의 부채 성향은 자국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 여부에 크게 좌우되는데 이들 북유럽 국가는 고율의 세금부과와 강제저축에 의해 공적연금 재원이 조달되고 사적연금 기금 규모도 매우 안정적으로 크다는 점에서 여타국과 차별화된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가계자산 중 연금자산 규모가 가계부채와 비슷한 수준이며 부동산 등 실물자산과 보험 등 여타 금융자산을 모두 합한 전체 가계자산 기준으로는 가계부채를 1.5~2배 정도 웃돌고 있다. 특히 덴마크의 가계부채비율이 여타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퇴직연금제도가 잘 발달해 가계의 은퇴 전 부채상환 유인이 상대적으로 작은 데 기인한다. 한편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스웨덴에 비해선 연금자산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1인당 GDP 규모가 지난해 기준으로 5만달러 수준인 두 국가보다 훨씬 큰 7만5천달러에 이르고, 경제적 번영정도를 평가하는 레가텀지수(이하 Legatum지수; 영국 Legatum연구소가 세계 142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경제, 기업가정신, 교육, 보건, 안전·안보, 국가경영, 개인의 자유, 사회적자본을 조사해 점수를 매기며, 2015년 기준으로 노르웨이 1위, 덴마크 3위, 스웨덴 5위이며 우리나라는 28위)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노르웨이중앙은행이 21개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가계부채비율에 차이가 나는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실시한 실증분석 결과에 따르면 GDP, 가계자산, 연금자산, Legatum지수 등의 설명변수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가운데 연금자산과 Legatum지수의 설명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연금자산비중 및 경제적 번영정도가 우월한 북유럽 국가들의 가계부채비율이 왜 주요국보다 추세적으로 높은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연금제도의 발달과 더불어 경제주체들이 보다 장기적 시계에서 의사결정을 하는데 우호적인 경제환경은 가계의 부채보유 성향을 높이고 은퇴 전 부채상환 유인을 작게 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북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 이후 주택건설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주택임대차시장의 더딘 발달로 국민들의 자가보유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대응해 정책당국은 모기지대출 등 주택금융에 대한 세제지원을 크게 강화해 주택보유이익에 대한 과세를 폐지하고 모기지대출 이자지급액에 대해 큰 폭의 세금감면을 시행했다.
북유럽 국가들 가계부채 리스크의 현재화 대비해 거시건전성 수단, 부동산 세제 꾸준히 정비
북유럽 국가들의 가계부채비율이 주요국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를 간략히 정리하면 연금제도 발달, 양호하고 안정적인 경제시스템 등이 가계의 부채수요 및 채무상환능력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국가의 가계부채비율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그 나라의 금융안정 리스크가 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통스러운 조정과정을 겪었던 국가들은 미국, 스페인 등 가계부채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 국가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계부채비율의 수준 및 상승속도 등에 유의해야 하는 것은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는 경우 실업, 소득 감소, 주택가격 급락 등 경제적 충격에 취약해지고 경제의 회복력 약화로 불황의 기간 및 크기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유럽 국가들과 같이 경제적 충격을 일정 부분 흡수하고 조기에 복원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금융·경제 시스템이 사전에 잘 구축돼 있다면 리스크 크기는 크게 낮아질 수 있다. 현재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가계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으로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한 대응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면서도 이와 같은 리스크가 현재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거시건전성 수단, 부동산 세제, 모기지대출 규제 등을 꾸준히 정비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최근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비율이 이들 국가에 근접한 수준으로까지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에 견줄 만한 대응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증가가 확실한 미래소득이 보장된 북유럽 국가들과 달리 주택가격 급락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불확실한 기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라면 충격 발생 시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막대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대응력을 갖추기 위해선 거시경제·거시건전성·부동산 등 가계부채 관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대책 이외에도 사회 각 부문에서 구조적으로 우리 경제시스템의 체질을 강화하는 노력을 병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