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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OECD: 빅데이터, 후생증진 vs 경쟁제한
이숭규 주OECD대표부 1등서기관 2017년 03월호


최근의 급속한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접근성의 확대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의 등장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모델의 등장은 개인정보 유출 등 부작용도 함께 초래하고 있는데, 그동안 이들 문제는 주로 소비자 보호 이슈로 다뤄져 왔지만 최근 들어 경쟁정책적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I T 기업 간의 인수·합병 시 다량의 데이터도 함께 이전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것이 경쟁법 차원에서 갖는 함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까닭이다. 이에 OECD도 지난해 말 제126차 경쟁위원회(Competition Committee)를 개최하고 빅데이터가 경쟁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했다.


빅데이터란 데이터 분석기술을 통해 신속하게(Velocity), 가치(Value) 있는 정보로 변환될 수 있는 다양한(Variety) 다량(high Volume)의 정보자산(4Vs)을 의미한다. 이러한 빅데이터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모여 참여자들 간에 효율적 매칭을 통해 거래가 촉진되는 다면시장(multi-sided market) 플랫폼을 통해 활용이 촉진되고 있다. 또한 데이터와 분석시스템만 있으면 추가적인 비용 없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중첩되는 영역에서 기존 사업자 간의 경쟁이 증진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가령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은 본래 각기 다른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메일, 메신저, 검색 등의 분야에서는 서로 중첩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빅데이터는 네트워크 효과나 규모의 경제 등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자사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이용자가 많은 기업은 고객데이터를 이용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이용자를 유인하거나, 맞춤형 광고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은 자료 저장공간 확보, 분석기술 개발 등을 위한 초기 구축비용이 높은 반면, 분석을 수행하기 위한 추가비용은 낮고 데이터 수집량이 증가할수록 분석의 정확도도 높아지기 때문에 규모가 클수록 더 효과적인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클라우딩 컴퓨팅, 자료분석 전문업체 등의 등장으로 자료분석을 위한 고정비용이 가변비용으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규모에 따른 진입장벽이 완화되고 있기도 하다.


프라이버시는 소비자 보호 이슈일까 경쟁 이슈일까
빅데이터가 경쟁법 집행에 미치는 영향은 분석수단의 측면과 경쟁행태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 분석수단 측면에서는 프라이버시(privacy)의 고려가 핵심 사항이다. 프라이버시는 전통적 의미의 경쟁정책 이슈는 아니지만, 프라이버시를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성하는 하나의 질적 요소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기업들의 고객정보 수집활동도 증가하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면서 개인정보 보호수준을 상품이나 서비스 선택의 중요한 고려요소로 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지배력은 경쟁자에 비해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지만, 프라이버시가 상품 선택의 중요한 요소가 되면 시장지배력을 판단할 때 가격 이외에 프라이버시에 대한 영향력도 중요한 고려요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측면에서 빅데이터는 관련 시장 획정이나 시장지배력 평가, 기업결합(M&A) 신고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련 시장 획정은 경쟁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조건인데, 전통적인 분석방법에서는 이른바 SSNIP(Small but Significant Non-transitory Increase in Price) 테스트를 활용한다. SSNIP는 ‘작지만 중요하고 비일시적인 가격인상’을 말하는데, 어떤 상품에 이러한 가격인상이 이뤄졌을 때 소비자들이 구매를 전환하는 상품의 범위를 관련 시장으로 획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가격을 소비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기 때문인데, 빅데이터 시장에서는 고객정보 수집을 위해 무료로 상품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격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분석방법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OECD는 품질을 기준으로 하는 SSNDQ(Small but Significant Non-Transitory Decrease in Quality) 테스트, 즉 ‘작지만 중요하고 비일시적인 질적 측면의 저하’ 테스트 등을 대안으로 제안했으나, 품질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한 경우 적용하기 곤란하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시장지배력을 평가함에 있어서도 상품이 무료로 제공된다면 일반적으로 가격을 결정·유지·변경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는 시장지배력을 평가하기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기업결합의 경쟁제한성을 판단하기 위해 경쟁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기업결합의 신고기준도 매출액을 기본으로 하나, 상품이 무료로 제공되는 상황에서는 매출액이 적절한 기준이 되기 어렵고 시장에서 영향이 큰 기업결합이 신고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경쟁행태 측면에서는 먼저 빅데이터를 이용하는 기업들 간의 결합 시 발생하는 양면시장(two-sided market)에서의 효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빅데이터를 이용하는 기업들은 한쪽에서는 상품 제공을 통해 고객정보를 확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객정보를 이용해 다른 기업들에 광고서비스를 판매하는 양면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빅데이터를 이용하는 기업들 간의 결합 시 광고서비스 측면에서는 고객맞춤형 광고가 가능해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고객정보 확보 측면에서는 소비자들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양자를 비교형량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가 기업활동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면 빅데이터에 대한 접근 차단이나 차별적 접근 허용,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한 기존 시장에서의 빅데이터 이용 등은 시장에서 경쟁사업자를 배제시키거나 신규사업자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한 반경쟁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빅데이터를 이용한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기업들이 빅데이터에 기반한 가격책정 알고리즘(algorithm)을 담합(collusion)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빅데이터에 기반한 실시간 가격분석시스템을 담합 준수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 수단으로 활용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빅데이터 규제 도입 두고 찬반 대립 중…
6월 경쟁위원회에서 후속 논의 진행

이러한 빅데이터가 가져오는 영향에 대해서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여러 가지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규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빅데이터 시장에서의 소비자 보호를 위해 상품 제공을 대가로 개인정보를 수집함에 있어서는 소비자들에게 개인정보 제공의 범위나 조건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들이 특정 업체에 고착되지 않고 서비스 제공업체를 손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자료수집·보관 방법을 표준화하는 등 정보이전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data portability)의 도입도 중요한 요소다. 또한 공공 부문의 데이터 독점으로 인해 민간기업의 시장진출이 저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공데이터 개방을 통해 공공-민간 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규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빅데이터 시장에서의 프라이버시 문제는 경쟁 이슈가 아닌 소비자 보호 이슈로서 경쟁법 시 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프라이버시는 그 의미가 불명확하고 침해 정도를 평가하는 것도 어려워 법집행의 객관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법 집행 시 상품의 모든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특성만 고려하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복수의 기업에 제공할 수 있으므로, 기존 기업에 고착되거나 기존 기업이 자사가 보유한 고객정보를 이용해 신규경쟁자의 출현을 저해하거나 경쟁사업자의 사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빅데이터가 경쟁정책적 측면에서 가져오는 효과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단계다. 그러나 빅데이터의 활성화는 프라이버시 문제를 비롯해 네트워크 효과, 규모의 경제, 고착 효과 등을 통해 시장에서의 경쟁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크다. 더욱이 빅데이터에 기반한 가격책정 알고리즘의 발달은 향후 담합조사 등 경쟁법 집행에서 방법론상의 중요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경쟁당국은 빅데이터를 통한 혁신과 경쟁을 촉진하면서도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그널링(signalling), 알고리즘, 담합’에 대해 논의할 이번 6월 OECD 경쟁위원회를 지켜볼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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