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후 다자무역협상이 지지부진하고, 각국의 비관세장벽 강화 등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이 늘고 있다. 기존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이 보호주의로 돌아서면서 중국과의 무역마찰 초래, 영국에 이어 여타 유럽 국가들의 EU 탈퇴 이슈 등이 잠재적 문제로 도사리고 있다.
2016년 하반기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세계무역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되고 있다. WTO는 2016년 세계무역 증가율을 1.7%로 예상했는데, 이것이 현실화되면 세계무역 증가율이 5년 연속 3% 미만이 되고 2009년 금융위기 이래 무역 증가율에서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특히 2016년 세계 GDP 성장률은 2.2%로 예상돼 세계무역 증가율이 GDP 증가율을 소폭 하회(0.8:1)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기회복 둔화와 美 우선주의 등으로 글로벌 신보호주의 대두 2008년 이후로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으로 일컬어지는 다자무역협상이 지지부진하고, 각국의 비관세장벽 강화 등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이 늘고 있다. WTO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0월에서 2016년 5월 사이 회원국들의 신규 무역제한조치는 총 154건(월평균 22건)으로 이전 기간의 104건에 비해 증가했으며, 이 수치는 2011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정책기조로 내걸고 취임 첫날부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조치를 시행하고 미국 노동자를 우선하는 무역협정을 체결하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FTA 등 기존에 미국이 체결한 모든 무역협정의 재협상을 주장하는 등 통상정책에서 대대적인 변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기존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이 보호주의로 돌아서면서 중국과의 무역마찰 초래, 영국에 이어 여타 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EU) 탈퇴 이슈 등이 잠재적 문제로 도사리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신보호주의 기조는 세계 경기회복 둔화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 등 표면적 요인 외에 중국경제가 중성장 기조로 전환되면서 철강 등 일부 산업의 공급과잉 심화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철강산업의 경우 공급과잉에 따른 수입규제 증가가 다른 산업에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있어 구조적 요인에 따른 보호주의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호주의는 비록 국내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자국 내 근로자·산업 보호 등을 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지속적인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보호주의는 경제논리뿐만 아니라 정치논리도 개입되며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듯 보호주의가 여러 문제점을 지님과 동시에 실제 경기회복 측면에서도 효과를 확신할 수 없음에도 역사적으로 경제위기 시에는 보호무역 정책이 반복적으로 추진돼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1월 19일 중국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은 “보호무역을 추구하는 것은 어두운 방에 자신을 가두는 것과 같다. 누구도 무역전쟁의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연상케 하는 발언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는 취임 전부터 미국의 일자리를 훔치고 있는 중국에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환율조작국 지정 등을 운운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반격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타깃은 중국이라는 것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 주요 싱크탱크들은 미국의 TPP 탈퇴로 아시아·태평양 경제통합 논의의 주도권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하는 중국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하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편 2015년 10월 신통상정책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활용의 극대화, 고용 및 성장 간의 연계성, 해외서비스 시장진출 및 투자확대 등을 목표로 정하고 적극적인 대외통상정책을 전개하고 있는 EU는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화와 개방에 역행하는 최근의 움직임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TPP 탈퇴 등 보호주의 기조에 적극 대응해 자유무역이 경제적 어려움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되며, FTA 추진이나 다자통상체제 강화 등 기존의 EU 통상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한 바 있다. 동시에 EU는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과도 보호무역주의에 공동 대응할 준비가 돼있다고도 밝혔다.
올 12월 WTO 각료회의서도 보호무역 가장 큰 화두… 다자무역체제의 지속적 성과도출이 중요 그렇다면 164개 회원국들이 모여 관세인하 및 비관세장벽 완화, 무역규범 제정 등을 논의하는 WTO에서는 전 세계적 보호주의 대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호베르투 아제베두(Roberto Azev?do) WTO 사무총장은 최근 브렉시트 등으로 세계경제가 충격을 받으면서 교역량 증가율이 크게 둔화된 것을 세계경제에 보내는 경종으로 인식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상황이 잘못된 정책, 즉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는 일각에서 자유무역의 폐해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려하면서 현 경제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개방된 무역시스템과 포용적 무역을 기조로 경제성장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일부 자유무역의 부작용에 대한 외부의 우려에 대해서도 공감하면서 피해 분야 지원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해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올해 12월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제11차 WTO 각료회의가 개최된다. WTO 각료회의는 모든 회원국의 통상장관들이 2년에 한 번씩 모여 WTO의 기능수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다자무역협정의 모든 사항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WTO의 최고의사결정 기구다. 이번 각료회의에서도 최대 화두 중 하나가 전 세계적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이 될 것이 분명하므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자무역체제에서 지속적 성과도출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각료선언문(Ministerial Declaration)에 담길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사적 성과 외에 11차 각료회의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미국의 신행정부 통상정책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현시점에서 올해 말 각료회의 성과에 대해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동안 회원국들 간 지속적 논의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된 분야로 농업 국내보조, 서비스 국내규제, 전자상거래 규범, 수산보조금 규율 등을 들 수 있고,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 등 이전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의 이행 등도 성과를 내야 할 분야다. 이 외에도 기존 DDA 협상 의제 외로 논의되는 중소기업, 글로벌 가치사슬과 무역, 다자간 투자규범 제정 등의 새로운 의제도 다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모든 회원국들이 동의해야 하는 컨센서스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앞서 예로 든 기대성과들이 달성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나, WTO 회원국들은 이번 각료회의에서 최소한의 성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상반기부터 다양한 형태의 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WTO 무역원활화협정 발효… 통관절차 개선 등으로 무역 활성화 기대 이러한 다자무역협상과 더불어 올해에도 WTO 차원에서는 보호주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G20, OECD 등 국제협의체와 공조해 보호주의에 대응할 것이며, 타 회원국의 산업보호조치나 각종 비관세장벽 등에 대해서는 WTO 분쟁해결 절차를 활용한 해소 노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이 불분명해 단언할 수는 없으나, 지난해 말 장관회의 개최를 통해 최종타결을 모색했던 WTO 환경상품자유화(EGA) 협상의 재개 및 연내 타결 시도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WTO 무역원활화협정(TFA)이 지난 2월 22일부터 발효됐다. 2004년 WTO 회원국 간 협상이 개시돼 2013년 제9차 발리 각료회의에서 타결된 TFA는 WTO 출범 이후 최초로 합의된 다자무역협정이다. 국제상공회의소(ICC)와 피터슨연구소에 따르면 협정 발효 시 통관절차 개선 및 무역거래비용 감소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1조달러 이상의 수출이 증가하고, 2천만개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돼 자유무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무역정치를 분석한 데슬러(I. M. Destler)와 오델(John S. Odell)에 의하면, 보호주의를 요청하는 미국 국내의 이익단체에 대해 수출산업 중에는 미국 정부의 보호주의가 외국 정부의 보복조치를 초래해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는 반보호주의 세력이 조직됨으로써 미국 무역정책이 자유무역의 원칙에서 완전히 괴리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정권 초인 지금에 비해 앞으로 미국의 통상정책이 다소나마 변화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쳐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미국 내 변화요소 외에도 중국, EU 등 거대 경제권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타 주요 무역국들의 보호주의 타파 노력이 동시에 진행돼 외적으로도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공동 노력의 장(forum)으로 WTO가 핵심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것이 바로 관세 및 기타 무역장벽의 실질적 감축과 국제무역 관계에서 차별대우를 없애고자 하는 WTO 설립협정의 정신에도 부합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