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진국 사이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거세지고 있는 반세계화 물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중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기구들도 반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세계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5월 10일 「세계화 활용을 위한 성찰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으며, OECD도 올해 각료이사회(6월 7~8일)의 주제를 ‘모두를 위한 세계화’로 선정하고, 본격 논의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으로 대변되는 미 대선결과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거세지고 있는 탈세계화·반세계화의 물결을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가 최근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 사이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대선결과가 이러한 흐름을 다소 완화시킨 것도 같지만, 여전히 서구사회는 반세계화 움직임에 대한 위기감이 큰 것 같다. 국제기구들도 반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세계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5월 10일 「세계화 활용을 위한 성찰 보고서(Reflection Paper on Harnessing Globalisation)」를 발표한 바 있으며, OECD의 경우에도 올해 각료이사회(6월 7~8일)의 주제를 ‘모두를 위한 세계화(Making Globalisation Work: Better Lives For All)’로 선정하고, 본격 논의를 진행했다.
중부·동부 유럽의 시장경제화, 각국의 무역·투자 자유화 정책이 세계화 배경 국제사회의 논의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세계화의 의미와 현재까지 세계화의 진행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OECD는 세계화를 ‘상품, 서비스, 자본, 인력의 국가 간 이동을 통한 경제적 통합’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1980년대 후반 이후 급속하게 진행돼왔다고 본다. 무역의 경우 세계 GDP 대비 무역 비중(무역집중도)이 1990년 30%에서 2015년에는 60%로 약 2배 상승했으며, 세계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FDI) 비중은 1980년대 초 0.5% 미만에 불과하던 것이 최근 10년 2.5%에 달하고 있다. 이민자 수의 경우 1960∼1980년에는 연간 100만명이었는데, 2000년 이후 500만명 수준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것은 중부·동부 유럽의 시장경제화,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세계경제 편입 및 고성장, 다수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 무역·투자 자유화 정책 등이 주원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세계 무역·투자 증가율이 큰 폭으로 둔화됐고, 다자무역협정 협상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민자의 경우에도 난민 증가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나, 유입국 인구 대비 이민자 비중은 1900년대 초반에 비해서는 최근 낮아지고 있다. 다만 유입국 국민들은 최근 이민자 유입 속도에 대해 실제치보다 높은 수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절대빈곤에선 구제했지만 불평등 심화로 불만 고조…포용적 성장을 핵심 어젠다로 삼아야 그러면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왜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세계화와 기술진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급속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세계화 이후의 전 세계 소득계층별 누적 소득증가율을 그려보면 코끼리 모양의 곡선이 나온다는 이른바 ‘코끼리 곡선’(미국의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2016년에 제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진국 중하위계층의 소득이 정체되고 있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된다. 세계화의 이득이 고소득계층과 개발도상국으로만 돌아가고 선진국의 중하위계층은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이들 국가의 소득분배구조가 악화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 하위소득 40% 가구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은 반면 상위계층의 소득과 부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선진국의 중위소득 가계의 생활수준 향상 속도가 예전에 비해 둔화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세계화의 진전 과정에서 절차적인 정당성 부족과 부작용에 대한 대응 미비가 국가제도와 정치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프랑스의 마크롱과 같은 비주류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으나, 세계화와 기술진보가 인류사회에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 OECD의 분석이다. 우선 경제적 세계화는 1990년 이후 100만명 이상을 절대빈곤에서 구제했고, 개발도상국과 신흥국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중산층을 증대시켜왔다.
OECD의 분석에 따르면 국제무역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매우 컸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역개방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가격 하락과 선택품목 증가에 따른 소비자의 후생 증가, 신기술과 경쟁의 확산을 통해 생산성 및 웰빙 증가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발생시켰다.
또한 이민의 증가는 유출국와 유입국 모두에 혜택이 있었으며, 경제통합은 경제적·정치적 목적을 위한 무력 사용을 줄이고 자유민주주의를 확산하는 한편,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분석한다.
세계화의 부정적인 영향은 기술 변화와 연계돼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세계화에 따른 손해가 특정 계층·기업·지역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고, 기술진보가 이런 현상을 강화하면서 국가 내 소득분배구조를 악화시킨다는 것이 문제다. 더구나 소득불평등도가 높은 국가에서 세대 간 사회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다는 분석은 악화된 소득불평등구조가 장기간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ies)이 지배하는 산업(망, 금융, 디지털)을 중심으로 승자독식(winner-take-most) 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수의 글로벌 대기업이 시장지배력 남용과 탈세 및 과도한 절세를 시도하고, 부패와 뇌물 문제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적인 영향들이다. 또한 금융 글로벌화가 환율과 금리 변동성을 확대하고, 실물경제를 불안하게 만들 우려를 높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경제성장에 따른 대기오염물질 증가 등으로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또 다른 측면의 부정적 효과다.
세계화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일반 국민들은 세계화가 글로벌 엘리트의 밀실협상으로 진행돼 투명성과 책임성, 그리고 이해당사자의 참여 부족 등으로 과정의 정당성이 결여됐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OECD는 세계화의 부정적인 영향에도 세계화의 흐름을 멈추거나 역행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라고 보고 있으며, 세계화가 보다 포용적이 돼야 한다(Inclusive Globalisation)고 생각하고 있다.
OECD는 세계화를 목적이 아닌 웰빙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하고, 심화되는 불평등 문제 해결과 포용적 성장을 핵심 어젠다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세계화는 ‘세계화를 고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하며, ‘선성장-후분배’가 아닌 통합적이고 저소득층의 기여·혜택을 제고하는 접근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고 개선하며, 이를 국가와 지역 수준에서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분야별로도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보호무역 조치 축소, 글로벌 거버넌스 강화 등이 정책과제 우선, 무역정책은 세계화가 여전히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무역제한 및 보호무역 조치를 축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스킬 제고정책 등 인적 자본 투자정책도 중요하지만 재분배정책도 함께 강화돼야 하며, 사회안전망 강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함께 노동의 이동성 제고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하위 40% 집단에 대해서는 평생학습, 디지털기술, 혁신, 금융에 대한 접근을 막는 장벽을 줄여주는 노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정책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는데, 범부처적인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정책이 필요하며, 중소기업에 시장·금융·스킬·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공정한 경쟁 환경을 제공하는 것과 기업가정신과 혁신능력을 높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중소기업정책 강화는 중산층을 강화하고, 사회적 이동성과 여성·청년 등 취약그룹에 대한 포용성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경 간 자본 이동에 대해서는 금융 안정성에 대한 리스크를 증가시키는 우려가 있지만, 이를 제한하기보다 보완정책에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감독능력이 부족하고 국제자본 이동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자본 이동 제한도 차선의 건전성 조치로서 일부 정당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세계화 과정의 정당성을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 무역·투자·국제기준 관련 정책결정 시에는 이해당사자 참여를 확대하고 민주적 토론을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로비, 정치자금, 다국적기업의 중요도 등을 규율하는 원칙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디지털화와 관련해서는 성장과 웰빙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혁신을 막는 규제장벽을 제거하는 한편, 디지털화 과정에서 근로자와 자본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서는 높은 회복력과 적응력을 가진 노동시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근로자가 기술변화에 따른 기회를 잡도록 노동시장과 제도를 설계하고, 적정한 스킬습득을 지원하고 적응비용을 감소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정책과 관련해서는 디지털기술 이해의 격차 해소를 위해 경쟁과 공정한 접근이 중요하며, 특히 격오지역과 낙후그룹이 통신망에 연결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을 권고하고 있다.
OECD는 국제 기준·규범과 국제협력의 개선을 통한 글로벌 거버넌스 강화를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세계화의 이익을 늘리고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국제 기준·규범은 조세, 반부패, 기업지배구조, 기업책임, 경쟁 등 많은 분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규범의 설계보다는 집행 및 영향력에 대해 많은 고려를 해야 하며 설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