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기고 이후 2개월 동안에도 WTO 수산보조금 협상이 수차례 추가로 진행됐고, 오는 12월 제11차 WTO 각료회의(MC11)까지 협상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쟁점에서 의견 수렴은 쉽지 않고, 새로운 추가 쟁점도 생기고 있다. MC11까지 5개월 남짓 남았다. 이제 남은 시간을 감안해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그러나 막상 무엇이 현실적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동상이몽이다. 왜 수산보조금 협상의 진전은 이리도 어려울까? 모든 협상이 진통을 겪기 마련이지만, 수산물과 관련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협정이 유독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관련 협상에서의 우리나라 입장과 무관함을 말씀드린다.
지난 기고문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매우 많은 쟁점이 존재하고 각 쟁점별로도 다수의 상이한 입장이 있다는 점이 수산보조금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다. 이는 실제로 수산업의 현실이 각국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무역 협상에서는 수출국(제조능력, 특허 등을 보유한 선진국 또는 자원보유국) 대 수입국으로 입장이 나뉜다. 수산보조금도 기본적으로 선진국(어업능력 발전국) 대 개도국, 연안국(해양자원 보유국) 대 내륙국이라는 큰 대립구조가 있으나 현실은 이보다 복잡하다.
선진국 vs 개도국, 연안국 vs 내륙국 넘어 쟁점마다 첨예한 입장 예컨대 선진국과 개도국 내에서도 수산업 발전 정도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선진국 중에서도 수산보조금 철폐를 주장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보조금 정책에 대한 재량을 원하는 국가가 있다. 개도국 중에서도 중국, 인도는 세계 최대 어획국 대열에 포함돼 있고, 최빈개도국(LDC)인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도 세계적인 수산대국이다. 그래서 수산보조금의 경우에는 개도국 우대(S&DT)를 전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개도국 대부분은 여전히 수산업이 저개발 상태에 있으므로, 수산업이 발전한 예외적인 개도국을 예시로 들어 개도국 우대를 전면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연안국 대 내륙국이라는 단순 구분도 어렵다. 우선 연안국의 경우 위에서 이미 살펴본 수산업 역량 수준과 별개로 지리적 위치도 주요 변수다. 열대, 온대, 냉대 수역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수산자원의 분포와 관리 필요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열대수역에 수산자원의 총량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각 어종별 상업성을 생각하면 반드시 열대수역 국가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열대수역에는 너무 많은 어종이 혼재해 있어 각별한 수산자원관리가 필요한데, 수산자원관리에는 엄청난 양의 돈과 자원이 투입되기 때문에 열대 연안국(대체로 개도국) 입장에서는 선진국이 내세우는 수준의 수산보조금 규율과 수산자원관리 원칙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기에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열대 도서국 중에서도 자국 관할수역에서 타국 선박의 활동을 허가하는 입어료 협정을 활용하는 수준이 달라서, 입어료 협정 관련 보조금 정책을 수산보조금 협상에서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한편 내륙국은 현재 협상에서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지만, 수산물을 수입해 가공하는 산업이 발전한 국가나 최빈국이어서 타국의 보조금이 지급된 값싼 생선을 주요 영양 공급원으로 의지해왔던 국가들로서는 연안국의 수산보조금이 폐지돼 생산가격이 오르는 뜻하지 않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우려할 수 있다. 내륙국까지 목소리를 낸다면 협상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요컨대 양쪽으로 분명히 편이 갈린 협상에서의 강한 대립도 깨뜨리기 어렵지만, 쟁점마다 수많은 입장이 엇갈리면서 누가 내 편이고 상대편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수산보조금 협상에서는 어디서부터 꼬인 실을 풀어야 할지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해양수산 분야의 최고 권위 기구인 FAO(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도 수산물, 수산업에 대한 법적 구속력 있는 범세계적 협정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SDG 14.6이라는 강력한 협상 위임권한 등 달라진 협상 환경 WTO라는 무역기구의 맥락에서 협상 난항을 이해해볼 수도 있다. 수산보조금 협상의 근본 목적은 수산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이므로 무역기구인 WTO보다 수산기구나 환경기구가 보다 적절한 논의 장소라는 견해가 있다. 현실적으로 말해 WTO에서 수산보조금 규율이 마련되면 분쟁해결 절차가 적용되는데, 이 경우 불가피하게 수산 분야의 기술적 사항을 검토해야 할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때 WTO 외부의 수산전문가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길지를 두고 이견이 대립한다.
또한 WTO는 보조금을 규율하는 기관이지 수산물, 어획활동을 규율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그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회의론도 있다. 즉 수산보조금의 유해성에 대한 정밀한 과학적 근거가 없어 섣불리 수산보조금 규율을 타결할 수 없다는 시각과, 수산보조금은 자원고갈의 부수적 역할밖에 못하므로 그에 비례하는 만큼만 규율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반면 국제해양법, 환경법 분야에서는 잘 모르면 유해하다고 간주해야 한다는 예방적 접근이 이미 잘 정립된 원칙이므로 수산보조금의 유해성을 정확히 모르면 유해하다고 일단 간주하고 예방적 차원에서 규율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상당수 학자들은 수산업이 전형적인 공유지(common pool)의 비극이 일어나는 분야이므로, 생산 과정에서의 불평등을 시정해 무역왜곡효과에 대처하려고 만들어진 현행 WTO보조금상계조치협정(SCM협정)은 수산보조금 협상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독립된 별도 협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법적·제도적 쟁점이 생기는 것이 불가피하므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수산보조금 협상이 더욱 꼬일 가능성을 우려해 SCM협정 틀 내에서 협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고 현행 협상에서는 이러한 입장이 대체로 우세하다.
달라진 협상 환경도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과거 수산보조금 협상은 DDA(Doha Development Agenda·도하개발어젠다) 협상의 일환으로 실시됐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마찬가지로 DDA 협상은 일괄타결(single undertaking)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 원칙은 국제관계학에서 다자주의의 특징 중 하나인 포괄적 상호성(diffuse reciprocity)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양자 또는 소수의 국가 간에는 서로 협상 카드가 안 맞더라도 다자가 참여할수록 서로 원하는 것을 찾기 쉬울 것이라는 이론이다.
DDA 협상에서는 일괄타결 원칙에 따라 농업, NAMA(비농산물), 규범(반덤핑, 보조금) 등 다양한 분야의 협상을 동시에 타결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로 인해 각 분야별 협상의 진전과 결과 간에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했다. 수산보조금은 규범 협상의 틀 안에서 이뤄졌는데, 규범 협상과 여타 협상 간의 균형도 추구했지만 규범 협상 안에서 실시되는 세부 분야(수산보조금, 반덤핑 등) 간에도 균형을 도모했다. 수산보조금 협상뿐만 아니라 반덤핑 등 여타 협상에서도 상당히 많은 쟁점이 있었다. 그 와중에 분야 간 균형을 고려하다 보니 수산보조금 협상의 진전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이래 진행 중인 수산보조금 협상은 상당히 다른 환경에서 진행되고 있다. 일단 2015년 12월 나이로비 각료회의에서 DDA 협상을 지속한다는 점에 대한 각료 간 합의가 도출되지 못함에 따라 DDA 협상의 큰 틀이 흔들리면서 일괄 타결 원칙도 상당히 흔들렸다. 게다가 현재 수산보조금 협상은 UN이라는 WTO 외부 기구에서 합의한 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수산보조금 규율 합의를 적극 주장하는 측에서는 반덤핑과 같은 수산보조금과 무관한 분야와의 연계 없이 별도로 논의하고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해 거의 모든 WTO 회원국들이 지지를 하거나, 최소한 반대는 하고 있지 않다. 즉 SDG 14.6이라는 강력한 협상 위임권한을 바탕으로, 여타 협상 분야와의 연계 문제도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므로 2015년 이전의 수산보조금 협상에 비해 현재는 조금 유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UN SDG 14.6의 기한은 2020년, 주어진 시간 3년 그런데 필자가 최근 협상장에서 WTO 회원국의 입장을 관찰하면서 조금은 다른 측면도 생각해보게 됐다. 일괄타결 원칙은 협상 진전을 더디게 하는 역할도 했지만, 수산보조금 협상 타결을 원치 않는 국가(그러나 예컨대 농산물, 반덤핑 등의 성과는 원하는 국가)를 협상에 참여시키는 유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여타 분야와 연계 없이 단독으로 진행 중인 수산보조금 협상에서는 성과 도출을 희망하지 않는 국가들을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게 할 강력한 유인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2020년인 UN SDG 14.6의 기한은 아직 3년여 남아 있다. 그 사이에 올해와 2019년 두 차례의 WTO 각료회의가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현실적 한계를 생각하면 3년이라는 시간도 마냥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국이 처한 현실과 해양수산자원의 특징으로 인해 수많은 기술적·정치적 쟁점에서 입장이 대립하고 있고, 환경과 무역 간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WTO가 적절한 논의 장소인지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있으며, 여타 보조금과 다른 수산보조금만의 특성으로 인해 협상 결과물이 WTO 협정 내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제도상의 이견도 있다. 끝으로 일괄타결 원칙이 사라진 변화된 협상 환경에서 수산보조금 협상장에 모든 국가들을 어떻게 적극 참여시킬 수 있는지 구조적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파리협정 등 성공리에 타결된 모든 다자협상은 어떤 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많은 난항을 거쳤지만 결국 기념비적 성과로 이어졌다. 게다가 수산자원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어느 순간, 각국의 수산업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수산자원의 보호를 이뤄낼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의 현실화를 뒷받침할 국제사회의 정치적 의지도 생기리라 생각한다. 수산자원의 지속가능이용이라는 대목표에 나름의 기여를 이뤄내기 위한 WTO 수산보조금 협상이 어떻게 진전될지 계속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