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조세 분야에서 조세당국과 다국적기업에 가장 관심이 되는 이슈는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대응 프로젝트일 것이다. 올해 7월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BEPS 대응 프로젝트의 이행을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하고 모든 국가들이 BEPS 포괄적 이행체제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내용이 공동선언문에 반영됐다.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즉 BEPS란 주로 다국적기업들이 조세조약 같은 국제 과세기준과 각국의 세법 규정의 차이와 미비점을 악용해 경제활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지역(주로 세율이 낮은 국가)으로 소득을 인위적으로 옮기는 조세회피 전략을 지칭한다.
구글·애플·아마존 등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알려지며 심각성 커져 2012년 6월 G20 정상회의는 OECD 주도로 BEPS 대응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을 의결했다. OECD와 회원국들은 3년여 동안 합심해 작업을 마무리하고, 2015년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BEPS 대응 프로젝트 15개 이행과제에 대한 최종보고서를 승인받았다. 아직까지 세부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2015년에 완료된 최종보고서로 BEPS 대응 프로젝트의 큰 줄기는 일단 정리가 됐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합의된 사항에 대한 각국의 이행 여부가 주요 관심사이며, 실제로 이행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이 진행 중이다. 그러므로 조세당국과 다국적기업 모두에 BEPS 대응 프로젝트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성실한 이행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조세당국 입장에서는 15개 이행과제 중 반드시 이행해야만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신속하게 추진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세심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다국적기업 측면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사업활동과 세후 순소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될 것이며, 그러한 영향의 정도는 자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조세당국이 어떠한 정책을 시행하고 이를 어떻게 추진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순수하게 국가 내에서만 이뤄지는 국내거래에 비해 국제거래를 통한 조세회피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조세당국의 집행력이 미치는 범위가 국내로 제한돼 있고 납세자와 조세당국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일한 거래 또는 상품에 대한 국가 간 조세상 취급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디지털경제의 발전으로 기존의 국제 과세기준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이 발생하기도 했다.
과거부터 OECD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조세회피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이뤄졌다. 소득의 원천을 결정하고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델조세조약을 개발했고, 다국적기업 내 계열사들이 거래가격을 조작해 소득을 인위적으로 세율이 낮은 국가로 이전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전가격 과세지침을 만들었으며, 각국이 제공하는 조세특례제도를 이용한 세원잠식 행위를 막기 위해 유해조세포럼을 만들어 각국의 유해조세제도를 개정 또는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에도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거대 기업들이 수년간 해외에서 많은 이익을 내면서도 전 세계 어디에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조세회피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져갔다. OECD와 G20 공동의 BEPS 대응 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국제 조세회피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BEPS 대응 프로젝트, 조세조약과 국제 과세기준 변경하고 기업활동의 투명성 높이는 방안 마련 BEPS 대응 프로젝트는 15개의 이행과제로 구성돼 있는데, 각 과제별로 이행의무의 강제성 정도에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조세조약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납세자가 서류상의 회사를 설립해 조세조약에서 제공하는 비(非)과세 또는 경(輕)과세 혜택을 얻고자 하는 조약편승(treaty shopping) 행위와 같은 조세조약 남용 방지, 세원잠식을 야기할 수 있는 조세특례제도를 억제하기 위한 유해조세관행에 대한 대응, 국제적 과세권 분쟁해결 절차인 상호합의 절차의 실효성 제고, 그리고 다국적기업이 전 세계에서 수행하는 사업활동과 그 내용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이를 국가 간 정보교환을 통해 공유하는 국가별보고서의 제출의무 및 정보교환은 회원국들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최소기준 과제로 제시됐다.
이를 상세히 살펴보면, 첫 번째 조세조약 남용 방지는 조세조약 전문에 조약의 목적이 이중과세 방지뿐 아니라 조약편승을 포함하는 조세회피로 이중비과세(double non-taxation)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도 있음을 명시적으로 반영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조세조약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거래의 주요 목적을 살펴 그 주요 목적이 조약의 혜택을 얻기 위한 경우에는, 조약의 혜택을 부인하는 주요 목적기준과 열거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조약의 혜택을 부여하는 혜택의 제한규정 중에서 하나 이상을 선택해 조약에 반영할 것을 요구한다.
두 번째 유해조세관행에 대한 대응은 유해조세 판정기준으로 실질적 활동 요건을 강화했다. 특히 디지털경제에서 지식재산권을 이용한 조세회피 행위가 심각하다는 인식 아래 OECD는 실질적 경제활동이 이뤄진 경우에만 세제 혜택을 부여할 것을 의무화하고, 새로운 기준에 따라 각국의 지식재산권 관련 조세특례제도를 점검하고 있다.
세 번째 국제적인 과세권 분쟁해결을 위해 상호합의 절차 신청대상을 확대하는 등 납세자의 권리구제 신청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일단 개시된 상호합의에 대해서는 해당 과세당국들이 2년 이내에 타결할 것을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별보고서 제출의무 및 정보교환과 관련해 다국적기업에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사업활동의 국가별 현황과 성과정보를 최종 모기업이 있는 국가의 과세당국에 제출하도록 하고, 해당 과세당국은 정보교환 절차를 통해 해외 자회사가 위치한 국가의 과세당국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BEPS 대응 프로젝트는 다국적기업의 인위적인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현상의 원인이 되는 조세조약과 국내 세법 및 국제 과세기준을 변경하고 다국적기업 활동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조세회피를 통해 은닉된 소득을 실질적 가치 창출활동이 이뤄진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라 하겠다.
기업은 납세협력의무 충실히, 정부는 최소기준 과제 성실히 이행해야 OECD는 OECD와 G20 이외의 국가들이 BEPS 대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독려하기 위해 2016년 6월 ‘BEPS 포괄적 이행체제’를 구성했고, 2017년 7월 기준 100여개 국가가 여기에 가입했다. 또한 BEPS 이행과제 중 조세조약 개정이 필요한 사항(예컨대 조세조약 남용 방지규정의 도입)들을 신속하게 반영하기 위해 지난 6월에는 ‘BEPS 대응 프로젝트 이행을 위한 다자협약’ 서명식을 개최했다. 또한 4가지 최소기준 과제의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처럼 BEPS 대응 프로젝트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살아 움직이는 현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조세당국과 다국적기업의 입장에서 BEPS 프로젝트에 대한 대응방안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먼저 다국적기업 입장에서 살펴보면 BEPS 대응 프로젝트에 따라 새롭게 발생한 납세협력의무, 예컨대 국가별보고서의 제출의무 등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겠다.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 부과된 의무가 부담이 되겠지만 투명성 제고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국적기업은 거래와 관련된 자료들을 충실히 준비하고 보다 세밀한 세무 관리를 수행할 것이 요구된다. 이는 외국 조세당국들이 BEPS 이행과제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과거보다 공격적인 세무간섭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세무 위험에 대한 대응이나 이전가격 관리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법하고 정당한 사업활동이 외국 과세당국에 의해 조세회피 행위로 오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세무 위험관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 입장에서 가장 먼저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최소기준 과제의 성실한 이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인 동시에 G20 국가다. 이미 BEPS 대응 프로젝트 논의 시작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왔고, 최소기준 과제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으므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이를 이행해야 한다. 조세조약 남용 방지의 경우 다자협약 가입을 통해 상당부분 이행이 됐지만, 아직 다자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과의 조세조약 개정이나 새롭게 조세조약을 체결하려는 국가와는 조약 남용 방지규정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유해조세제도와 관련해서는 현재의 조세특례제도가 새로운 국제기준과 일치하는지를 점검하고, 향후 새로운 특례제도를 설계할 때 세원잠식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상호합의 절차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상호합의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과 인력을 보강하고, 교육훈련을 강화해 새로운 국제 과세기준에 뒤처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납세자의 상호합의 신청권을 제한하거나 조세당국 간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세법 규정이나 관행이 있는지 살피고, 필요한 경우 제도 개선과 업무처리의 혁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국가별보고서의 경우 올해 처음 시행하는 제도이므로 납세자 입장에서는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다. 시행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꼼꼼하게 제도를 만들고 납세자와의 소통 창구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별보고서가 교환되면 다른 국가에서 이를 남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상황별로 대응방안을 만들어놓는 것도 필요하겠다.
다음으로 최소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과제들에 대해서는 도입 시 경제적·재정적 효과를 분석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국가들이 함께 과세기준을 만드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우리 입장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취하고, 우리에게 다소 불리한 내용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이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할 방법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BEPS 대응 프로젝트는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각국의 조세수입과 직결되는 세원의 변화를 초래해 국가 간의 과세권 다툼도 치열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국제사회에서의 명분과 우리의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도록 BEPS 대응 프로젝트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세심한 접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