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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농업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
윤동진 주제네바대표부 공사참사관 2017년 09월호



GATT 시절에는 의식주와 관련된 무역에 다자규범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소비자로서 국민 개개인의 삶과 밀접한 사안이기도 하고 대부분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관련됐기 때문이다. 이를 ‘특별대우’라고 한다면 WTO 출범 후에는 ‘특별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WTO(세계무역기구)는 상품 및 서비스 무역을 다룬다. 세 가지 주된 임무가 있다. 먼저 협상은 회원국이 준수할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작업이다. 있는 규범을 잘 지키도록 감시하는 일을 이행점검, 그리고 다툼이 생기면 절차에 따라 판결하는 기능을 분쟁해결이라 한다. 자국 국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정한 규범을 따르게 하려면 절차를 밟아야 한다.


1980~1990년대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2000년대 FTA 협상이 국회 비준에서 진통을 겪었던 배경이다. 요컨대 WTO는 경제 이슈를 주로 다루지만 각국의 정치적 의사 결정과 분리될 수 없다.


GATT, 섬유·농산물 등은 일반 상품과 달리 취급
유사한 맥락에서 의식주 사안에는 다자규범이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소비자로서 국민 개개인의 삶과 밀접한 사안이기도 하고 대부분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관련되기 때문이었다. 1947년 가트(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1995년 WTO를 비교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먼저 가트는 섬유와 의류를 예외로 취급했다. 1961년 가트 외부에 섬유국제협정이 생겼고, 1973년부터 다자섬유협정(Multi-Fiber Arrangement)이라 불렸다. 주요 내용은 수입 쿼터의 배분과 관리였다. UR에서는 섬유를 일반 상품과 같이 취급하게 했다. 다만 연착륙을 위해 10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2005년에 와서 섬유에 대한 예외 취급은 종료됐다.


농산물에 대해서도 가트는 타 상품과 달리 취급할 근거를 몇 곳에 담아뒀다. 가트 출범이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배경으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농산물에 대한 인식이 사뭇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가트 11조(일반적 수량 제한의 금지)가 대표적인 예다. 수량 제한을 금지하되 예외적인 경우에 허용하는 내용이다. 수출 측면에서는 식량 등 필수품이 긴급히 부족할 경우 쿼터 부과가 가능하다. 수입의 경우에는 농수산물에 한해 적용한다. 사유는 동종 품목의 국내 생산을 규제하거나 재고가 생겨 이를 무상 또는 시장가격 이하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경우 또는 수입된 원료에 의존하는 축산물의 생산을 규제하되 생산이 무시할 만한 수준일 경우에 허용된다. 요컨대 국내 공급정책상의 필요로 가격지지, 수매정책을 취하는 경우에 수입물량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미국은 11조만으로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1955년에 별도 웨이버(waiver·의무면제)를 확보했다. 즉 농산물 감산 조치, 이해관계국 협의를 전제로 농수산물에 대한 수량 제한을 할 수 있게 공식 인정받았다.


WTO, 농업과 농산물에 대한 특별 관리로 전환
그 무렵 주요 유럽국가들은 농업에 관한 공동의 규율을 시작했다. 일명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이라 불리는 것이다. 역내로 수입되는 농산물이 정해진 가격보다 낮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액만큼 가변 부과금으로 채우는 내용이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이 모호한 규정(grey area)을 이유로 농산물 수입통제에 나서면서 가트 11조를 엄격히 해석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1980년대 UR 협상의 파고가 유독 농산물에 집중된 이유 역시 가트가 농산물 교역을 제대로 다루려 하지 않았거나 미국과 EU가 경쟁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 다른 가트 조항은 16조(보조금)다. 16조는 두 부분인데 하나(section A)는 1947년 가트 출발 때부터 있던 보조금 일반조항이고 다른 하나(section B)는 1955년에 추가 보완된 수출보조금 폐지다. 가트 시절의 보조금 규율은 느슨했다. 통보와 협의 의무에 국한됐다. 수출보조금은 1967년부터 금지했지만 기초품목(primary commodities; 농산물, 임산물, 수산물, 광물 등 대량으로 교역하기 위해 통상적인 가공을 거친 것)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했다. 즉 수출보조금으로 인해 세계시장 점유율이 정당한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으면 가능하다고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수출보조 경쟁이 더욱 가열됐고 UR을 거쳐 지난 나이로비 각료회의(MC10)까지 이어졌다.


한편 보조금은 이에 대한 무역구제 성격인 상계관세와 같이 읽어야 한다. 가트 6조 7항을 보면 기초품목에 대한 보조금의 경우 국내 가격지지, 생산자 소득안정 시스템이 수출과 별도로 움직인다면 상계관세 부과요건(material injury)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예외를 상정하고 있다.


끝으로 주택은 부동산이다. 굳이 WTO와 관련지어 말하자면 서비스 협정의 적용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도 가트 시절에는 없다가 1995년 WTO 출범과 함께 다자체제에 포함된 항목이다.


특별대우라고 하면 추가적 배려 등 긍정적 어감을 주는 반면, 특별관리라고 하면 더 꼼꼼히 챙긴다는 인상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가트 시절의 농업과 농산물은 특별대우에 가깝고 WTO에 와서는 특별관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 근거를 몇 가지 살펴보겠다.
우선, 농산물은 예외 없이 모든 품목의 관세가 양허됐다. 우리나라의 쌀처럼 최근까지 드물게 관세양허를 피한 사례가 있지만 2017년 7월 기준으로 이제는 모두 양허됐다. 반대로 공산품, 수산물 등에는 아직 미양허한 품목이 국가별로 남아 있다. 아울러 국별 양허표(C/S)상 농산물은 TRQ(저율 관세 할당) 의무가 도입됐다. WTO 출범으로 수량 제한이 폐지됐기 때문에 TRQ는 가트 시절의 수량 제한(쿼터)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하게 되면 EU와 협의할 농산물 수입 TRQ 수만도 1천개라는 보도가 있었다. UR 협상에서 기존에 양허하지 않았던 농산물에 대한 개방은 관세화 방식을 택했는데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일시에 관세가 높아질 수 있었다. 그래서 기존 교역물량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수입량까지는 저율로 관세가 적용되도록 수출국의 우려를 반영할 것이다. 수입국 입장은 SSG(Special Safeguard·특별긴급수입제한조치)로 보완했다. 이는 일반 세이프가드와 달리 별도 조사 및 판정 절차 없이 미리 정한 조건에 부합하면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내용이다. 또한 농산물에는 종량세, 혼합세 등 비종가세 항목이 많고 특히 선진국의 경우에 그 정도가 심하다.


일괄타결방식 수정, 보호주의 경향 등으로 다자간 합의 여건 더 어려워져
하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보조금 규율이다. WTO는 보조금협정을 신설해 규율하고 있지만 농업에 대한 보조[농업협정은 보조금(subsidies)이 아니라 보조(support)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금전 지출뿐 아니라 정부 시장개입에 따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격지지 효과를 금전적 지출과 동일하게 계산한 개념]는 농업협정이 따로 있다.


농업보조는 신호등 분류 방식에 따라 무역왜곡 효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최소 수준이라는 이유로 감축의무를 면해주는 그린박스, 무역왜곡 효과는 있지만 생산감축 조치 등을 조건으로 달아 감축하지 않아도 되는 블루박스, 끝으로 무역왜곡 보조인 앰버박스로 구분한다.


UR 협상에서 기준 연도 동안 지급 실적이 있는 보조를 계산해서 일정 수준이 넘으면 양허표에 기재했다. 그래서 농업을 지원할 여력이 적었던 대부분의 개도국은 지금까지 AMS(총보조측정치)가 0인 상황이다. 반면 선진국은 AMS를 받았고 줄여왔지만 여전히 남은 AMS의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다. UR의 후속 협상으로 시작된 DDA(도하개발어젠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 중 하나는 농업 국내 보조를 둘러싼 주요 국가의 요구에 부딪혀 타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고로 농업협정상의 평화 조항(제13조)이 종료됐기 때문에 농업보조는 농업협정뿐 아니라 보조금협정의 규율도 동시에 받고 있다.


수출보조금은 선진국은 올해부터 없애되 일부 예외사항은 2020년까지 폐지키로 했다. 개도국은 2018년 말까지, 예외적으로 2022년까지 철폐한다. 개도국의 수출 물류비는 2023년까지, 최빈개도국 등 일부 국가는 최장 2030년까지도 유지할 수 있다.


농업 국내 보조는 계속 예외로 남을 것 같다. 올해 12월 열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WTO 각료회의의 성과 후보 중 하나이지만 포괄적 합의 도출 가능성은 없다. 보조총액의 상한 등 부분 수확과 향후 작업계획 정도가 가능할 수 있다. 최근 다자에서 일괄타결방식(Single Undertaking)의 수정, 보호주의 경향 등으로 합의 여건은 더 어려워졌다.


시장접근 분야도 달리 취급될 수밖에 없다. 특히 TRQ는 상업적 이익과 직결된다. 획기적 계기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 양자관계라면 서로 대가를 주고받아 고칠 수 있지만 다자의 경우에는 여의치 않다. 양허를 변경할 경우 이론상 전체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제로는 주요 이해관계국과 양자협상을 해야 한다. TRQ 관세 수준으로 해당 품목의 양허 관세를 낮추는 것도 아주 드물다. 결국 WTO가 존속되는 한 농업과 농산물에 대한 특별한 관리는 불가피하다. 이처럼 다자협상은 일단 합의되면 역사로 살아 이후 협상의 출발선이 되기 때문에 당면한 제네바 협상에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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